얼어붙은 재생에너지 시장…영농형·건물 일체형 태양광이 돌파구

재생에너지 산업은 국가 성장동력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문제가 됐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전환 보급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특히 태양광의 경우 발전사업이 어려운 산지라는 한계가 있어 유휴부지를 활용한 영농형 태양광, 건물과 연계하는 건물일체형 태양광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현지 상황에 맞는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영농형 태양광이 설치된 농지에서 농민이 트랙터를 운전하고 있다.사진 제공=한화큐셀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적 투자에 나섰다. 미국은 지난 8월 자국 내 태양광산업과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통과시켰다.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연료비가 들지 않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자국 내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에너지전환에 드는 국가적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다.

유럽연합은 지난 5월 에너지전환 가속화를 담은 정책 패키지 ‘리파워 EU(REPower EU)’를 발표하고 유럽 내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태양광산업 분야에서 막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높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대규모 태양광, 풍력발전단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국가의 미래 성장동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섹터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는 국제적 추세에 비해 아직 뒤처져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1년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수력발전을 제외하고 5.8%로 OECD 37개국 중 최하위인 37위다.상반기 태양광 보급, 전년 대비 24% 감소

그로부터 2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재생에너지 보급은 제자리걸음이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 규모는 2018년 2.6GW, 2019년 3.9GW, 2020년 4.7GW로 늘어나다 2021년에는 4.4GW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설비 확인 통계를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태양광 보급 실적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24% 감소했다. 재생에너지 내수 시장이 얼어붙는다면 국내 태양광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타격은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재생에너지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이행 요구에 맞닥뜨리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8월에 조사 발표한 내용을 보면, 국내 제조 분야 대기업 중 29%가 글로벌 수요 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최근 들어 RE100을 선언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화석연료 비중이 높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은 우리나라의 에너지믹스로 인해 적기에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산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는 태양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약 70%가 태양광발전 사업이 어려운 산지로 이루어진 만큼 유휴 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보급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농지에서 농경과 태양광발전을 병행하는 ‘영농형태양광’, 농업 기반 시설을 활용한 용배수로 태양광, 철도나 도로의 방음벽을 활용한 태양광 그리고 심미성과 내구성을 갖춘 태양광 모듈을 건물 외벽재로 사용하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 등이 있다.

공급망 확보와 산업육성을 통해 재생에너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의 노력뿐 아니라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에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로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복잡한 인허가 절차, 신규 발전소의 전력 계통 연계가 지연되는 문제 그리고 지자체의 이격거리 규제로 대표되는 엄격한 태양광 입지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유휴 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고, 농촌 지역의 소득도 올릴 수 있는 영농형태양광 같은 신규 사업 모델 활성화가 국내 태양광산업 확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규가 개정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행 농지법 시행령하에서는 농지의 타 용도 일시 사용 허가 기간이 최장 8년에 불과해 이 기간이 지나면 수명이 20년 가까이 남은 발전소를 철거해야 한다. 이는 영농형태양광 사업의 경제성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유휴 부지 태양광의 잠재량 역시 뛰어나다. 국내 농경지의 5%에만 영농형태양광을 설치해도 석탄화력발전소 32기 용량에 맞먹는 32GW 규모의 영농형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농지는 약 160만ha이며, 이 중 약 5%에 해당하는 8만ha에 100kW 규모 영농형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약 32GW의 발전소 설치가 가능하다. 이는 국내 900만여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BIPV는 건물 분야의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핵심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발전비용 낮추는 연구개발 가속

한화큐셀은 영농형태양광 전용 모듈 제품을 개발, 출시해 국내 발전단지, 실증단지 등에 적극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또 2021년 농림부 산하 농림식품기술평가원이 진행하는 영농형태양광 표준 모델 개발 국책 과제에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공동 연구 중이다. 2023년 출시를 목표로 BIPV 신제품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도로 방음벽에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발전 설비를 개발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태양광발전 비용을 낮춰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와 연구개발도 지속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 비용을 낮추는 데는 셀과 모듈의 출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태양광 시장에서 주로 판매되는 PERC(Passivated Emitter and Rear Cell) 셀 이후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TOPCon(Tunnel Oxide Passivated Contact) 셀로 제조 라인을 전환하고 있다. 한화큐셀 사업 부문에 속하는 한화솔루션은 국내 공장에 약 1300억원을 투자해 고효율 TOPCon 셀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2023년 4월부터 양산에 나설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PERC, TOPCon 등 실리콘 셀이 도달할 수 있는 효율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차세대 셀을 위한 연구개발 경쟁도 한창이다.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셀은 페로브스카이트 셀과 실리콘 셀을 결합한 ‘결정질 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이하 탠덤 셀)이다. 학계는 실리콘 셀의 이론 한계 효율인 29%를 크게 상회하는 44%의 이론 한계 효율을 지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화큐셀은 지난 3월 독일 헬름홀츠 연구소(Helmholtz-Zentrum Berlin, HZB)와 공동으로 최대 28.7% 효율을 기록한 탠덤 셀을 개발했다. 2026년경 양산을 목표로 탠덤 셀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산학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제도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국내 현실에 맞는 합리적이고 달성 가능한 에너지전환이 실현되어야 한다.

유재열 한화큐셀 한국사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