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치열한 글로벌 표준 전쟁

표준 주도권이 곧 '경제안보'
ISO 의장 맡은 한국엔 기회

곽주영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국제표준을 담당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통신연맹(ITU)에서 각각 한국인과 미국인을 의장으로 선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국제표준을 선도하는 3대 국제기구인 ISO, ITU,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중에서 ISO는 2015~2017년, ITU는 2019~2022년, IEC는 2020~2022년 중국인이 의장(ITU는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번 선거 결과로 ISO와 ITU는 조직 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표준은 기술을 연결하는 가치 중립적인 도구지만 개발도상국들은 기술 종속을 벗어나고자 자국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해왔다. 그중 움직임이 두드러진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10년 전 국가발전 기본 정책인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을 실행할 때부터 국제표준화를 공업신식화부(우리식으로는 산업정보화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 국가적으로 국제표준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었는데, 그중 국제표준에 영향을 주는 국제기구 진출은 국제표준화 프로젝트의 주요 업무였다. 자국민의 의장 재임기에 기술위원회와 워킹그룹에서 중국의 지배력은 실제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 시기 디지털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거나 다른 국가와 이해관계가 겹치는 이슈에서 중국의 정치적 부상은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계속해서 우려를 표시했고 중국 내부에서도 ‘중국표준 2035’ 등의 문서에서 표준을 산업정책으로 접근하는 게 옳지 않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미국은 전통적으로 시장주의 입장에서 표준 역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비롯해 산업에 국가의 개입을 심화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 개입을 비난하지만, 미국 역시 국가의 보안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중국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심지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인 2020년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국제경제의 규칙은 미국이 만들어야 한다”고 확실히 명시했다.

ITU에서 미국인 의장의 당선과 ISO에서 한국인의 당선 등은 단순히 보면 선거로 조직의 리더십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따지고 보면 사실상 해당 기구 내 반중 세력이 결집한 결과라고 해석된다. 경제안보라는 말이 유행하는 이 시대는 예전의 보호주의로 돌아가되 과거와는 달리 우방과 최대한 협력해 정치적으로 위협이 될 것 같은 국가에 대항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비교우위에 기반해 글로벌 수준에서 국가들 사이에 최적화한 공급망이 억지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처럼 작고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는 경제안보라는 프레임은 아무리 우방이 대우를 잘해준다고 할지라도 글로벌 규제와 같다. 그리고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우방과의 관계도 예전 냉전 시대 같을 수 없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국제표준화 기구의 의장을 처음으로 맡았는데, 우리 역시 이를 기회로 국제표준화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를 기대해본다. 중국처럼 국제표준화 전문인력을 양성해 ISO 외 다른 국제기구에도 진출하고 또 국가끼리 교류를 활발히 전개해 표준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면서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키워 국제기구와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원활히 하길 기대한다. 신흥 기술들의 표준화 동향을 실시간 업데이트해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이 더욱 증대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