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침공에 갈라진 서유럽과 중앙유럽…신간 '납치된 서유럽'

세계적 문호 밀란 쿤데라 기고문 등 두 편 소개

1956년 9월 헝가리 통신사의 편집부장은 당일 아침 개시된 러시아의 부다페스트 침공에 관해 "우리는 헝가리를 위해, 그리고 유럽을 위해 죽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가 1983년 프랑스 잡지 데바(Le Debat)에 기고한 '납치된 서유럽'은 헝가리 통신사 편집부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쿤데라는 이 글에서 한때 유럽 지역을 통합했던 '문화의 힘'이 줄어들고, 러시아(당시 소비에트)의 서진이 본격화하면서 문화공동체였던 서유럽과 중앙유럽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쿤데라가 언급한 중앙유럽은 체코, 헝가리, 폴란드, 더 넓게는 오스트리아를 일컫는다. 글을 발표할 당시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모두 러시아의 위성 국가로 전락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헝가리 혁명(1956), 프라하의 봄(1968), 폴란드 봉기(1956·1968·1970) 등 치열한 저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와 가톨릭을 문화의 젖줄로 삼은 국가다. 비잔틴과 정교회의 영향 아래 있던 러시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과는 문화적 생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때문에 중앙 유럽인들은 슬라브주의에 입각한 러시아적인 것들, 이를테면 획일적이고, 균일화를 지향하며 중앙집권적인 문화를 이질적 요소로 받아들인다.

예컨대 러시아 소설가 고골의 글은 "다른 리듬의 시간, 다른 방식의 웃음, 삶, 죽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중앙유럽의 예술가들은 근본적으로 서유럽과 같은 문화적 맥락을 공유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문화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빈에서 활동한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과 헤르만 브로흐는 중앙유럽에서 근대 모더니즘의 길을 열었고, 프라하에서 독일어로 글을 쓴 카프카는 현대성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민속에서 길을 찾은 헝가리 음악가 버르토크는 '무조음악'의 쇤베르크와 함께 20세기 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탐색했다.

이런 서유럽과의 문화적 유착 때문에 중앙유럽 작가들은 '슬라브적인' 혹은 '러시아적인'이라는 수식어에 반감을 품는다.

영어로 '암흑의 핵심'을 쓴 폴란드 출신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그의 책에 붙은 '슬라브 정신'이란 꼬리표에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동유럽과 문화 자체가 달랐던 중앙유럽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서서히 동유럽화했다.

쿤데라는 이를 '중앙유럽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한때 중부유럽과 서유럽을 긴밀히 연결해주던 '문화의 힘'이 전반적으로 쇠락한 점도 중앙유럽의 동유럽화를 가속했다고 덧붙인다.

"정치체제로 볼 때 중앙유럽은 동유럽이다.

하지만 문화사로 보면 중앙유럽은 서유럽이다.

그런데 유럽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기에 중앙유럽에서 단지 정치 체제만을 본다.

다시 말해 유럽은 중앙유럽에서 동유럽만을 볼 뿐이다.

"
쿤데라의 기고문은 최근 민음사를 통해 '납치된 서유럽-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국내 번역돼 출간됐다.

책에는 쿤데라가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 작가 대회에서 발표한 연설문 '문학과 약소 민족들'도 함께 수록됐다. 장진영 옮김. 84쪽. 1만1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