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시절'엔 인기 폭발했는데…철거 논란 휩싸인 '이것' [선한결의 IT포커스]

'공중전화' 120년 만에 사라질까
"쓰는 사람 없는데 유지비용 年 100억" 철거 논란

과기정통부, 공중전화 의무 해제 논의
'삐삐' 시절엔 대기줄 길게 늘어섰지만
스마트폰 보급에 수요 '뚝'…올해만 5000부스 줄어
사진=연합뉴스
서울 기준 지하철 기본요금은 1250원, 간선버스 요금은 1200원입니다. 그렇다면 공중전화 요금은 얼마일까요. 대중교통 요금은 대략적으로라도 답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만 공중전화 요금이 기본 70원(180초당)이라는 걸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쓰는 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내 공중전화 부스는 이미 20년째 감소세인데요. 이번엔 이같은 추세에 속도가 더 붙을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정부가 공중전화를 통신사업자의 의무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구상을 내놓을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공중전화 대신 편의점 전화' 될까

27일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중전화에 대한 보편적 역무를 해제하는 내용을 내부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음달 9일 총리 주재 안건으로 올리는 디지털 인프라 혁신방안에 포함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중전화를 더이상 대국민 통신 복지서비스의 일환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과기정통부 등은 디지털인프라 혁신방안이 나오면 내년 하반기 안에 전기통신사업법과 시행령 등을 이 방안에 맞게 개정할 계획입니다.

이에 따라 공중전화는 도서지역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신업계의 중론입니다. 공중전화는 실제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연간 약 100억원씩 유지·보수가 필요한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국내 1위 유선사업자인 KT가 자회사 KT링커스를 통해 공중전화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공중전화로 발생한 '보편서비스 손실금'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도 나눠서 부담하는 식으로 비용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공중전화를 쓰지 않는 각 통신사 소비자들까지 각자 나눠서 공중전화 유지 비용을 떠받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입니다. 만일 공중전화에 대한 보편적 통신역무가 해제되면 운영사가 아닌 통신사업자가 비용을 분담할 근거도 없어지게 됩니다.

과기정통부는 공중전화 대신 시민들이 편의점 내 전화를 이용하도록 하는 안 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동 중인 공중전화부스는 드물지만, 편의점은 길거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습니다. 1990년대에 편의점이나 수퍼 등에서 전화카드를 사서 공중전화를 이용했던 것과 비슷한 구조인데, 여기서 공중전화부스가 빠지고 편의점 내 전화가 들어가는 식입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실무 단계에서 검토 중인 사안으로 확정되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삐삐' 덕분에 한때 인기였지만

국내 공중전화의 역사는 120년 전인 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성전화소에 국내 첫 공중전화가 설치됐습니다. 1910년대 초엔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 수 있는 공중전화가 도입됐습니다.

1921년 서울(당시 경성)엔 공중전화 20개소가 있었는데, 이중 이용률이 가장 높았던 남대문 역 앞 공중전화는 매월 1000통화 가량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1970년대에 공중전화 부스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625 전쟁 이후 1960년대엔 서울 시청 등 7곳에 무인 공중전화기가 설치됐습니다. 전화카드로 통화할 수 있는 공중전화는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처음 나왔고요.

1990년대에 들어선 공중전화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삐삐(무선호출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무선호출기에 ‘8282’ ‘486’ 등이 뜨면 공중전화로 달려가 친구나 애인에게 전화 연락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10대 중후반 이상이었던 분들이라면 학교나 회사 휴식 시간마다 공중전화에 줄이 길게 늘어섰던 풍경을 기억하실 겁니다. 간혹 대기줄에서 앞 사람 통화가 길다며 시비가 붙는 일도요.
이같이 공중전화 수요가 폭증하자 공중전화 부스 수도 늘었습니다. 1999년엔 전국 공중전화 수가 15만3000대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스마트폰 보급율 99%…수요 '뚝'

한때 ‘인기폭발’이었던 공중전화는 2000년대 들어 수요가 급감합니다. 개인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공중전화를 쓸 일이 점점 줄었기 때문입니다. 연령대가 낮은 학생들이나 군인 정도가 공중전화를 찾았습니다. 수신자 부담전화(콜렉트콜)가 주를 이뤘고요.
이후 휴대전화 구매 연령이 낮아지고, 2018년 4월부터 차례로 군인들에게 개인 휴대폰이 허용되면서 공중전화 수요는 더 떨어졌습니다.

공중전화부스도 철거가 잇따랐습니다. 1999년 15만3000대에 달했던 공중전화 수는 지난달 말 기준 2만8000여대로 줄었습니다. 작년 연말에 비해 약 11개월만에 5000대가 줄었습니다.

남은 부스는 공기질 측정기 등으로 활용

요즘엔 이용률이 활발한 공중전화부스가 없다시피 합니다. 국내 휴대전화 보급률이 99%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사실상 유휴시설이 된 공중전화부스에 다른 기능을 추가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 부스를 전기오토바이·스마트폰 배터리 교환소나 공기질 측정기, ATM결합부스 등으로 활용하는 식입니다.
구로전화국 앞 전기오토바이 배터리 교환형 충전소. 공중전화부스에 충전소 기능을 더했다. 사진 서울시
수년 전부터 장기적으로는 공중전화의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없애는 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입니다.

2014년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습니다. 스마트폰 등 대체 서비스 이용 가능성이 공중전화를 넘어서 공중전화의 역할이 미미해진다면, 보편적 서비스로의 공중전화 제공 의무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중전화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일 공중전화의 보편적 통신 역무가 해제되더라도 공중전화부스가 당장 전부 철거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게 정부와 통신업계 안팎의 중론입니다.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공중전화는 수십년간 제공되어 온 통신 서비스"라며 "단순히 발표를 통해 당장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공중전화의 수요가 적다고 해도 비상·위급시 등의 경우 쓰임새가 아예 없진 않다"며 "정부와 업계 등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장기적으로 변화가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