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니엘부터 BTS·슈프림까지…캔버스가 된 루이비통 트렁크

패션의 중심 장악한
'루이비통의 아트월드' 뉴욕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의 창업자 루이 비통(1821~1892)은 200년 전 프랑스 쥐라의 작은 마을 앙쉐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났다. 배나 기차 대신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걸어서 파리까지 간 그는 귀족들의 여행 가방을 나르는 짐꾼이 됐다. 파리의 귀족들은 고급 실크 드레스를 투박하고 둥근 상자에 싣고 다녔다. 짐꾼이었던 루이 비통은 이동하기 편리하고 튼튼한, 그러면서도 여러 개를 쌓아 올릴 수 있는 트렁크를 만들었다. 이 트렁크는 루이 비통 창업주의 철학을 담은 가장 아이코닉한 제품이 됐다.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예술가와 기술자, 디자이너 등 루이비통의 하우스 앰배서더 200여 명이 200개의 특별한 루이비통 트렁크를 제작했다. 작품들은 미국 뉴욕 매디슨가에서 지난 14일 개막해 오는 12월 31일까지 열리는 ‘200개의 트렁크, 200명의 선구자(200 Trunks, 200 Visionaries)’ 전시에서 공개됐다. 루이비통의 철학을 계승한 특별한 예술 작품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시장을 찾았다.
방탄소년단(BTS)이 작업한 그라피티.

장 미셸 오토니엘부터 BTS까지

루이비통은 이번 전시를 위해 200여 명의 아티스트에게 직접 루이비통의 트렁크 원형을 건넸다. 트렁크가 하나의 캔버스가 된 셈이다. 3층에 걸쳐 마련된 전시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트렁크들이 전시됐다. 루이비통이 쇼윈도에서 트렁크를 진열했던 방식 그대로 겹겹이 상자 위에 쌓아둔 예술적인 트렁크들을 만날 수 있다.
장 미셸 오토니엘
‘유리의 예술가’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은 트렁크에도 유리를 적용했다. 인도 길거리에서 날리는 진흙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황톳빛 유리 타일 트렁크는 ‘나만의 집’을 갖기 원하는 인도인들의 꿈을 담았다.
포르나세티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장 필리프 델롬은 우주 여행과 밴드를 그린 ‘여행으로서의 음악’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여행이 어려웠던 시절, 음악이 곧 여행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는 과거 이 전시관 자리에 있던 옛 바니스 뉴욕 백화점의 초기 광고에 참여했고, 루이 비통이 뉴욕 관련 여행책을 만들 때 일러스트를 의뢰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도 돋보였다. 뉴욕 기반의 스케이트보드 패션웨어로 시작해 전 세계 MZ들이 열광하는 브랜드가 된 슈프림(supreme), 1990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십여 년간 루이비통을 이끈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한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 포르나세티 등이 브랜드의 시그니처 컬러나 패턴을 적용한 특별한 루이비통 트렁크를 제작했다. 레고는 루이 비통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얼굴을 레고로 프린팅한 액자와 생일 케이크를 담은 특별한 작품을 전시했다.

하늘을 나는 트렁크·NFT 패브릭도 ‘눈길’

키드슈퍼의 ‘열기구 트렁크’
예술적 상상력이 담긴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조종사이자 제트에어 설립자인 프랑키 자파타는 ‘하늘을 나는 트렁크’를 제작했다. 그가 만든 비행체는 2019년 프랑스 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앞에서 ‘공중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트렁크 내부에 소형 비행기에 쓰이는 터빈을 그대로 적용해 실제 하늘을 날 수 있다”며 “트렁크를 끌지 않고도 여행을 다니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점성술 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수전 밀러는 트렁크 내부에 루이 비통이 탄생한 시각인 1821년 8월 4일 오전 3시 태양계 행성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작가에 따르면 그가 태어난 시각의 행성은 창의력과 품질,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확신 등을 상징한다고. 이외에도 영국 DJ 겸 프로듀서 벤지 비가 제작한 주크박스 트렁크, 순수 디지털 기술로 만든 루이비통의 NFT(대체불가능토큰) 패브릭 등이 돋보였다. 국내에서는 BTS가 한글로 ‘엘뷔’(LV·루이비통의 로고)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넣은 작품을 전시해 인기를 끌었다.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