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로댕의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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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악마 같은 로댕. 그저 내 것을 훔칠 생각만 했어. 내가 자기보다 잘 될까 봐."
정신 병원에 있던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분개합니다. 이 여인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인물을 언급하며 원망을 쏟아내죠.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세계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1864~1943)입니다. 클로델은 로댕에 못지않은 천재 조각가였음에도 '로댕의 연인'으로만 주로 알려졌습니다. 로댕은 실력 있는 조각가로 인정받았으나, 클로델은 정반대였죠.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고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2013)은 연인의 짙은 그림자에, 여성 예술가라는 굴레에 갇혀 외면당한 조각가 클로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브루노 뒤몽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클로델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클로델이 로댕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 사랑과 차별로 인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죠.
클로델은 어릴 때부터 찰흙을 갖고 조각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영화에서도 클로델이 흙을 뭉쳐 매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클로델이 15살이 되자 조각가 알프레 부셰를 찾아갔습니다. 클로델은 부셰의 도움을 받아 17살에 파리의 사립학교인 콜라로시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여성을 입학시켜주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이곳은 드물게 허용을 해줬죠. 로댕을 만나게 된 것도 부셰의 영향이었습니다. 부셰는 뛰어난 조각가 로댕을 클로델에게 소개해 줬습니다. 당시 로댕은 43살로 미술계에서 이미 유명 인사였습니다. 그를 만났을 당시 클로델의 나이는 19살에 불과했죠. 클로델은 이 만남 이후 로댕의 제자이자 모델이 됐는데요. 두 사람은 24살의 나이 차에도 사랑에 빠졌습니다. 로댕은 클로델을 보는 순간부터 깊이 매료됐다고 합니다. 클로델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지적이었습니다. 조각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강한 의지도 갖고 있었죠. 로댕은 반짝이는 클로델에게 빠져 적극적으로 구애했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활활 타오르는 기쁨을 준다오. 내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질지라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슬픈 결말조차 후회스럽지 않아요. 당신의 그 손을 나의 얼굴에 놓아주오. 나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의 가슴이 신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로댕이 쓴 편지)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됐고, 클로델은 10년 동안 로댕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대가는 너무 컸습니다.
로댕은 여성 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곁엔 오랜 세월 사실혼 관계를 이루고 있던 연상의 여인 로즈 뵈레도 있었습니다. 뵈레는 로댕이 무명이던 20여 년 전부터 지원해주고 돌봐준 여인입니다. 두 사람 사이엔 클로델보다 두 살 어린 아들도 있었습니다. 로댕은 클로델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큰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스캔들이 생긴 겁니다. 클로델의 ‘사쿤탈라’(1888)와 로댕의 ‘영원한 우상’(1898)이라는 작품입니다. 격정적인 에너지, 육감적인 포즈 등이 유사하죠.
로댕은 스캔들로 인해 자신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클로델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가까스로 표절 시비를 잠재웠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 제작을 방해한 적도 있습니다. 클로델의 '중년'(1899)이란 작품은 한 여자에게 끌려가는 남자, 그 남자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또 다른 여자를 표현한 겁니다. 뵈레, 로댕, 클로델의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죠. 그러자 로댕은 이 작품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게 될까봐, 클로델이 작품을 주물로 완성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클로델은 로댕의 아이를 가지게 됐지만, 곧 유산하게 됐는데요. 로댕은 유산까지 한 클로델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쳤습니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이후 클로델은 다양한 작업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로댕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집어삼켰죠. 여성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영향도 컸습니다.
클로델은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 괴로워하다 결국 정신 질환을 겪게 됐습니다. 우울증과 편집증 증상에 시달렸죠. 클로델을 응원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은 그를 몰래 정신 병원에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클로델은 병원에 30년 동안 갇혀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나마 남동생 폴이 마지막까지 그와 연락을 주고 받았었는데요. 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그에게 준 재능은 모두 그의 불행을 위해 쓰였다." 치명적인 사랑, 시대의 잘못된 관념. 이 모든 것들이 한데 결합돼 한 예술가의 빛나는 재능을 오히려 독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클로델은 그 굴레에 갇혀 자신이 만든 수많은 작품을 깨부쉈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은 조각이 90여 개 정도에 불과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클로델의 작품들은 세상에 그토록 나오고 싶어 했기에,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어 했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정신 병원에 있던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분개합니다. 이 여인은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인물을 언급하며 원망을 쏟아내죠.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세계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구일까요.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1864~1943)입니다. 클로델은 로댕에 못지않은 천재 조각가였음에도 '로댕의 연인'으로만 주로 알려졌습니다. 로댕은 실력 있는 조각가로 인정받았으나, 클로델은 정반대였죠.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고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2013)은 연인의 짙은 그림자에, 여성 예술가라는 굴레에 갇혀 외면당한 조각가 클로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브루노 뒤몽 감독이 연출하고, 줄리엣 비노쉬가 클로델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는 클로델이 로댕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 사랑과 차별로 인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죠.
클로델은 어릴 때부터 찰흙을 갖고 조각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영화에서도 클로델이 흙을 뭉쳐 매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클로델이 15살이 되자 조각가 알프레 부셰를 찾아갔습니다. 클로델은 부셰의 도움을 받아 17살에 파리의 사립학교인 콜라로시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여성을 입학시켜주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이곳은 드물게 허용을 해줬죠. 로댕을 만나게 된 것도 부셰의 영향이었습니다. 부셰는 뛰어난 조각가 로댕을 클로델에게 소개해 줬습니다. 당시 로댕은 43살로 미술계에서 이미 유명 인사였습니다. 그를 만났을 당시 클로델의 나이는 19살에 불과했죠. 클로델은 이 만남 이후 로댕의 제자이자 모델이 됐는데요. 두 사람은 24살의 나이 차에도 사랑에 빠졌습니다. 로댕은 클로델을 보는 순간부터 깊이 매료됐다고 합니다. 클로델은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지적이었습니다. 조각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강한 의지도 갖고 있었죠. 로댕은 반짝이는 클로델에게 빠져 적극적으로 구애했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활활 타오르는 기쁨을 준다오. 내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질지라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슬픈 결말조차 후회스럽지 않아요. 당신의 그 손을 나의 얼굴에 놓아주오. 나의 삶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의 가슴이 신성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로댕이 쓴 편지)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됐고, 클로델은 10년 동안 로댕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대가는 너무 컸습니다.
로댕은 여성 편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곁엔 오랜 세월 사실혼 관계를 이루고 있던 연상의 여인 로즈 뵈레도 있었습니다. 뵈레는 로댕이 무명이던 20여 년 전부터 지원해주고 돌봐준 여인입니다. 두 사람 사이엔 클로델보다 두 살 어린 아들도 있었습니다. 로댕은 클로델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큰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스캔들이 생긴 겁니다. 클로델의 ‘사쿤탈라’(1888)와 로댕의 ‘영원한 우상’(1898)이라는 작품입니다. 격정적인 에너지, 육감적인 포즈 등이 유사하죠.
로댕은 스캔들로 인해 자신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클로델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가까스로 표절 시비를 잠재웠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 제작을 방해한 적도 있습니다. 클로델의 '중년'(1899)이란 작품은 한 여자에게 끌려가는 남자, 그 남자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또 다른 여자를 표현한 겁니다. 뵈레, 로댕, 클로델의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죠. 그러자 로댕은 이 작품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게 될까봐, 클로델이 작품을 주물로 완성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클로델은 로댕의 아이를 가지게 됐지만, 곧 유산하게 됐는데요. 로댕은 유산까지 한 클로델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쳤습니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이후 클로델은 다양한 작업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로댕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집어삼켰죠. 여성 예술가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영향도 컸습니다.
클로델은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 괴로워하다 결국 정신 질환을 겪게 됐습니다. 우울증과 편집증 증상에 시달렸죠. 클로델을 응원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은 그를 몰래 정신 병원에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클로델은 병원에 30년 동안 갇혀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나마 남동생 폴이 마지막까지 그와 연락을 주고 받았었는데요. 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그에게 준 재능은 모두 그의 불행을 위해 쓰였다." 치명적인 사랑, 시대의 잘못된 관념. 이 모든 것들이 한데 결합돼 한 예술가의 빛나는 재능을 오히려 독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클로델은 그 굴레에 갇혀 자신이 만든 수많은 작품을 깨부쉈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은 조각이 90여 개 정도에 불과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클로델의 작품들은 세상에 그토록 나오고 싶어 했기에, 사람들과 마주하고 싶어 했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