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 “동시대 음악에 사명감…자작곡 연주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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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향과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1번'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가 지난 5월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첫 국내 협연 무대를 갖는다. 다음달 2일 부산문화회관과 1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부산시립교향악단(지휘 최수열)과 진은숙의 바이올린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양인모는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곡이어서 2년 전쯤 악보를 구해 연습했다”며 “연주 기회가 잡혀 콩쿠르가 끝난 지난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루에 세 시간씩 연습해 왔다”고 말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후 첫 국내 협연
“콩쿠르 출전은 세상에 내 연주 알릴 기회
이제 시작…착실히 커리어 쌓아 나갈 것”
2001년 초연된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교향곡과 비슷한 구성의 4악장 형식으로 연주 시간은 약 25분이다. “고전적인 측면과 현대적인 측면이 공존하면서 대화하는 듯한 곡입니다. 일반적인 협주곡은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주장을 펼치는 대립 관계인데, 이 곡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1악장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다른 협주곡에선 듣기 힘든 음색을 가진 곡으로 타악기만 27종이 사용됩니다. 다른 현대음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스틸 드럼 같은 타악기도 등장합니다. 음향적인 색채감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협주곡이죠.”그는 “앞으로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같은) 동시대 음악에 더 매진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순간부터 현대음악을 들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예전에는 슈베르트나 브람스를 들었을 때 그랬거든요. 현대음악과 감정적인 연결고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쓰는 느낌도 나고요. 음악인으로서 사명감도 느낍니다.”’동시대 음악 매진‘에 음악가의 ‘사명’까지 거론하는 것이 과하게도 들린다. 어떤 사명을 말하는 걸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음악가가 21세기 음악에 관심이 없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하면 할수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은 무엇이고,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친구가 저를 위해 작곡한 곡을 곧 초연할 예정인데 이처럼 현존하는 작곡가들과 작업하는 게 중요합니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작곡”이라고도 했다. “제가 직접 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대신 곡을 잘 쓰고 싶어요. 그래서 매일 작곡도 조금씩 하고 있고 조언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회장에서 현대음악이 연주될 때 부담을 느끼는 청중들이 많다. “현대음악을 연주했을 때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연주자의 생명과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한 발짝이 아니라 반 발짝씩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곡을 현대곡으로만 프로그래밍하는 게 아니라 (고전·낭만 레퍼토리와) 적절히 섞어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러면서도 본인은 “현대음악이 쉽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서울의 어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들리는 음들이 현대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새롭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오셔서 즐기시면 됩니다. 특히 이번 연주회는 세계적인 작곡가인 진은숙의 작품을 접하는 것이어서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양인모는 6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영재교육원을 거쳐 한예종에서 김남윤 교수를 사사했다. 2013년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미리암 프리드의 지도를 받던 2015년 메이저 콩쿠르인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던 그가 올해 또 다른 메이저 콩쿠르인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 의외라는 반응도 나왔다.
그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콩쿠르에는 다시 나가지 않아도 ‘원하는 걸 이제 다 할 수 있겠구나’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후 미국에서 계속 공부한 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면서 생각보다 우승 이후 연주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인모는 지난해초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주 활동무대를 유럽으로 옮겼다. “유럽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빠
방법은 또 다른 콩쿠르에 출전하는 것이어서 지난해 12월부터 시벨리우스 콩쿠르를 준비했습니다.”그는 “누구나 콩쿠르를 준비하고 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콩쿠르 출전은 세상에 나의 연주를 알릴 좋은 기회인 것은 맞다”고 강조했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특정 곡에 매진하면서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계를 시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유럽 친구들을 보면 콩쿠르에 나가지 않고도 좋은 커리어를 쌓는 연주자들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건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어요. 내가 다른 연주자들과 얼마나 다른지, 다른 연주자들은 어떤 해석을 하는지 보고 느낄 수 있죠. 콩쿠르 결과가 대회 심사위원들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훌륭한 연주자이자 교육자들인 심사위원들께 나의 연주를 들려주고 조언을 받을 기회이기도 합니다.”그는 “경쟁은 콩쿠르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주자로서 커리어를 얻는 것보다 길게 유지하고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연주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려고 합니다. 콩쿠르 이후 정체하는 연주자들을 많이 봤어요.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연주자들도 많고요. 제게 가장 두려운 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진지하고 솔직하게 음악을 대한다면 길게 생명력 있는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인모는 다음달 7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K-클래식’ 무대에도 선다. 피아니스트 박상욱과 함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K301’과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을 연주한다. 그는 “갑자기 기획된 것이긴 하지만, 한국 일정에 청와대 연주가 추가돼 기쁘다”며 “사진으로 보기에는 멋져 보이고 TV에서만 봤던 곳인데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