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한경 CMO Insight

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의 경영학 특강
‘유’익하고 ‘재’미있는 경영 인사이트

친한 고객일수록 더 세심하게 살펴라
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 좋다는 게 뭐니?” “친구끼리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니?”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친구 사이가 항상 도움이 될까? 다음 일화를 통해 친구 사이에 대해 한 번 되짚어보자.

A씨는 다가오는 생일에 평소 즐겨 찾는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래서 레스토랑에 미리 전화해 레스토랑 주인에게 리버뷰 테이블 예약을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생일날 온 가족이 레스토랑에 들어섰는데 리버뷰 테이블이 만석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A씨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 대답은 레스토랑 주인이 A씨와 친한 사이인가, 아니면 그냥 일반적 사이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주인과 친한 사이라면 실패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용서하지 않을까? 아니면 테이블 하나를 잡아 주지 못한 주인에게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낄까? 관련 연구에 따르면 A씨의 반응은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선 인간관계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관계는 크게 교환 관계(exchange relationship)와 공동체 관계(communal relationship)로 구분할 수 있다. 교환 관계는 주고 받는 것이 정확한 사이인 반면, 공동체 관계는 친구 같은 사이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하는 관계와 친구를 대하는 관계를 상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교환 관계는 자신이 제공하는 이익에 상응하는 이익을 나중에 얻기를 기대하거나, 이전에 받은 이익을 돌려주기 위해서 이익을 제공하는 사이다. 교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명시적으로 했든 암묵적으로 했든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 만족하지 못한다.한편 공동체 관계는 친분에 근거한 사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익을 제공하는 관계다. 자신이 어떤 이익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에게 되돌려 줘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사이가 아니다. 물론 공동체 관계의 사람들도 자신이 받은 이익을 돌려 주곤 한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에 근거한 것이지 의무감에 의한 것은 아니다.

교환 관계와 공동체 관계는 상대방 행동에 대한 기대나 실제로 발생한 행동에 대한 반응에 있어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규범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환 관계 경우는 상대방이 누구든지 상관 없이 상호성(reciprocity) 규범이 작용한다. 예컨대 고객은 자신이 구매한 상품이 지불한 가격만큼 가치 있기를 기대한다. 한편 직원은 고객이 제때에 지불하길 기대하고 상품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손상하지 않고 반품하길 기대한다. 이처럼 상호 간에 기대하는 것과 각자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사이가 교환 관계다.

반면 공동체 관계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관계를 맺은 개인들의 니즈와 의무를 중시하는 규범이 작용한다. 따라서 자신 관점에서 생각하느냐, 아니면 타인 관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기대와 반응이 달라진다. 자신 관점 사고를 한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니즈를 이해하고 충족해 주길 바란다. 타인 관점 사고를 한다면 자신이 상대방 니즈에 최대한 응대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그럼 고객 A씨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로 돌아와 보자. 우선, 고객이 레스토랑 주인과 친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는 교환 관계의 규범이 작용할 것이다. 서비스 실패가 발생하면 고객은 레스토랑 주인이 비즈니스 계약상의 주요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불만족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관계를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고객이 레스토랑 주인과 친한 경우를 살펴보자. 이 경우는 교환 관계와 공동체 관계가 동시에 작용해 문제가 약간 복잡해진다. 특정 상황에서 어느 관계 규범이 부각되는가, 고객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자신 관점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니즈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서비스 실패에 대한 책임이 레스토랑 주인에게 있다고 생각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반면 타인 중심 사고를 하는 사람은 서비스 실패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자신의 의무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 서비스 실패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부정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대방이 약속을 얼마나 분명하게 했는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레스토랑 주인이 테이블을 반드시 잡아 주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했다면 고객은 자기 니즈에 더 집중하고 레스토랑 주인의 명백한 실패에 대해 불만족한다. 반면 예약을 할 당시 레스토랑 주인이 테이블을 잡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약속했다면 다르다. 고객이 레스토랑 주인 입장에서 상황을 헤아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성향도 중요하다. 상호의존적 성향의 사람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 상대방이 지키지 않은 의무가 없는지 따지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실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실패를 용서하지 않고, 남남일 때 보다도 오히려 더 단호히 돌아선다. 이에 반해 독립적 성향의 사람은 상대방이 왜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본인이 독립적인 만큼 타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망 좋은 테이블을 잡아 주겠다는 약속이 깨어진 상황에서 고객이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변수를 살펴 보았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친구라고 해서 다 같은 친구는 아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항상 자신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해야할 일 보다 상대방 책임을 따지는 사람,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상대방에 의존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친한 관계의 경우 더 큰 배신감을 느끼고 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이미 고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니 충성심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에 소홀히 하지 말라. 새로운 고객 유치하는 데만 힘 쏟지 말라. 친한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오히려 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친한 고객일수록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

친한 사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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