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술동맹 시대, 도전이자 기회다

중국과의 통상마찰 확대 피해야
기술력으로 시장 지배력 '구축'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팬데믹을 벗어날 희망에 차 있던 세계 경제는 팬데믹 이전은 물론 팬데믹 기간보다 더욱 엄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 팬데믹 기간 중 가장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했던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웃도는 막대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살포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의 수요 급증과 팬데믹에 의한 공급망 붕괴의 영향이 겹쳐 지난 40년간을 통틀어 가장 높은 8%를 넘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또 이런 고인플레를 당초 목표 수준인 2%대로 낮추기 위해 초강력 금리 인상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 경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절에도 없던 기술동맹의 이름으로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 및 대외정책 방향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월 “투자, 조정, 경쟁”의 세 단어로 정리했다. 즉 미국의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더불어 동맹국들과 더욱 긴밀히 조정하고, 중국과는 더욱 맹렬히 경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맹국들과의 ‘조정(alignment)’이란 것이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국익 극대화를 위한 조정이라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칩4’ 기술동맹, 광물안보동맹, 또 포괄적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주도하고 있다.바이든 행정부의 다양한 경제동맹과 기술동맹 가운데 우리 경제에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는 주된 먹거리인 반도체산업이 걸린 칩4 동맹이다. 현재까지 논의는 세계 반도체산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대만,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기에 논의 자체에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나라가 메모리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 설계기술과 제조장비, 기초소재에서 미국 기술과 일본 소재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런 협력체제 출범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 조치와 같은 충격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또한 네 나라의 설계기술과 생산기술은 충분히 상호 보완성이 있는 만큼 다양한 기술적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하듯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 반도체산업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압력 수단으로 칩4가 작동하고, 그래서 중국과의 또 다른 통상마찰로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할 수 있는 전략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이에 더해 칩4를 통해 미국 반도체 설계기업과의 기술 협력과 중국 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도 찾아야 한다.

한편 미국 반도체산업의 중국 시장과의 완전한 단절은 미국 반도체 기업에 더 큰 손실이라는 비판 여론이 미국 내에서도 비등하다. 즉 미국이 필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기술적 비교우위 구조이지 중국 시장과의 단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일정한 수준의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중국 반도체산업의 성장은 미국 국익에 더욱 부합한다는 논리다. 바로 이 대목이다. 미국과 중국, 또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과 기술의 수평적 무한경쟁 구조가 아니라 수직적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술적 시장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그 선결과제다. 그리고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국제 산업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 반도체산업의 생존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