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사, 비극의 코르셋…'합스부르크展'엔 전설이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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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천명 관람…알고 보면 더 즐겁다‘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전시회에서도 딱 들어맞는 얘기다. 미리 ‘예습’한 다음 작품을 만나면 더 많은 정보와 감동을 담을 수 있다.
600년에 걸친 유럽 근대미술과 근대사
96점의 작품 통해 꿰뚫어 볼 수 있어
역사·회화·공예품별 돋보기식 관람을
국립중앙박물관서 내년 3월1일까지
연일 수천 명씩 방문하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문화예술의 황금기 걸작 96점을 한데 모은 전시회다. 작품을 빌려준 빈미술사박물관과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도 “어떤 작품이 전시되는지, 어떻게 전시를 구성했는지 등을 알고 방문하면 더 많은 게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미술 전문가들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시차를 두고 세 번에 나눠 관람하라고 추천한다. 처음엔 역사적 배경을 따라 관람하고, 다음엔 회화에 집중하고, 마지막엔 공예품을 중심으로 ‘돋보기식’ 관람을 하라는 설명이다.
○울상인 투구, 갑옷 줄무늬로 만든 이유
합스부르크 전시가 열리는 기획전시실은 주제별로 5개 방으로 꾸며졌다. 여기에 2개의 특별관을 더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와 번쩍이는 4점의 갑옷이다.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유럽’이란 공식을 만든 이다. ‘갑옷을 사랑한 남자’이자 ‘마지막 기사’란 별명을 가진 사나이다.막시밀리안 1세는 ‘정략결혼’ 정책으로 3대에 걸쳐 합스부르크의 위력을 전 유럽으로 확장했다. 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1508년은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 경쟁하면서 제국 제후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막시밀리안 1세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녀이던 마리 부르고뉴와 결혼해 돈과 군사력을 동시에 얻었다. 결혼을 통해 아들과 딸은 스페인과 식민지, 손자와 손녀는 체코와 헝가리를 차지하며 유럽을 호령하는 가문으로 거듭났다.번쩍이는 갑옷들은 1500~16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보존 상태를 자랑한다. 빌헬름 폰 보름스 1세의 ‘세로 홈 장식 갑옷’은 당대에 유행한 줄무늬 양식이다. 줄무늬는 갑옷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동시에 빛을 여러 각도로 반사해 번쩍이게 했다. 투구의 표정도 독특하다. 울상 짓는 것 같은 표정은 당시 유행하던 가면극의 영향을 받았다.
○6점뿐인 야자열매로 만든 공예품
2번 방은 공예품과 희귀 예술품 애호가였던 루돌프 2세와 페르디난트 2세의 수집품으로 구성됐다. 프라하의 ‘예술의 방’에 들어서면 루돌프 2세가 수집한 16세기 후반의 ‘누금 장식 바구니’를 볼 수 있다. 금실을 연결하고 꿰어내거나 금 알갱이를 붙이는 ‘누금 세공’의 정수를 볼 수 있다.전 세계에 단 여섯 점만 남아 있는 ‘야자로 만든 공예품’ 가운데 두 점도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15~16세기는 유럽 항해사들이 낯선 대륙의 물건을 들여오던 때였다. 야자열매가 그랬다.3번 방은 명작 회화의 향연이다. 루벤스가 그린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1620~1625)는 인간계로 내려온 신의 모습을 재치있게 그린 작품이다. 바로크의 대표 화가 루벤스는 ‘분업’의 대가였다. 1608년 공방을 열어 여러 화가와 협력해 그림을 그렸다. 밑그림과 인물만 직접 그리고, 정물이나 동물은 다른 화가에게 맡겼다. 이 그림도 정물과 거위는 프란스 스네이데르의 공방에서 그렸다.
정물화에선 음식과 꽃의 상징들을 찾아보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아침 식사’(1660~1669)에는 멜론과 포도, 굴과 후추통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등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는 고대 의학자들의 ‘사체액설’로 인해 건강에 좋은 레몬, 굴, 후추가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걸 보여준다.
튤립의 상징도 강렬하다. 17세기 튤립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식물이었다. 활짝 핀 튤립은 역사적 사실을 숨기는 허상을, 떨어진 꽃은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낸다.
○‘개미허리’ 엘리자베트의 코르셋
4부와 5부에선 인물에게 집중하는 게 좋다. 합스부르크 왕가 유일한 여성 통치자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 중 한 점을 보면 상복을 입고 있다. 사이가 좋았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별세한 지 7년 뒤인 1772년에 그린 작품인데도, 이런 옷을 입었다. 테레지아는 죽을 때까지 짧은 머리와 검정 옷을 고수했다고 한다.‘시시’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황후 엘리자베트의 초상화에선 코르셋을 눈여겨보자. 1860년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비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아들의 자살로 인한 충격으로 해외로 떠돌던 중 60세에 죽음을 맞았다. 늘 허리를 19~20인치로 조여 매는 등 극심한 다이어트를 했던 그의 코르셋은 비극적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네바 여행 때 암살자에게 복부를 칼에 찔렸는데, 하도 단단하게 코르셋을 조여 맨 탓에 몰랐다고 한다. 코르셋을 벗자 피가 쏟아졌다. 그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란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 전시는 내년 3월1일까지.
김보라/이선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