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 확보할 때

서효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세계 8억28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으며, 코로나19로 1억5000만 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해 상시화된 기상이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세기의 사건이 식량 수급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식량 위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중동지역 국가 빵 가격이 한때 2배 가까이 치솟으며 이집트는 밀기울(밀을 빻아 체로 치고 남은 찌꺼기) 사용 권장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해바라기씨유 생산과 공급이 어려워지자 터키와 영국 등 유럽 곳곳에서 식용유 사재기와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세계 34개국이 주요 곡물이나 식용유 등 다양한 식품 원재료를 포함한 식량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며 불안정한 식량 공급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가공식품 물가는 1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식용유는 55.2%, 밀가루는 45.4% 올랐다. 우리가 소비하는 빵, 과자, 면, 음료 등 식품 제조원가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4~78% 수준으로,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식품 가격도 상승하는 것이 필연적인 구조다. 우리나라는 특히 밀과 콩을 비롯해 소비량이 많은 주요 농작물 수입을 미국과 브라질 등 몇몇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 변동성도 우리 식량안보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외부 충격에도 흔들림 없는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때다.

정부는 낮아지고 있는 식량자급률을 올려 식량주권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농촌진흥청은 밀, 콩 등 주요 작물의 자급률 향상을 위한 품종 개발과 보급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수입 밀과 차별화한 맞춤형 품종 개발은 국산 밀의 자생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국립식량과학원은 국수용, 빵용 등 용도별 밀 품종과 알레르기 성분이 없는 밀, 항산화 효과가 높은 밀 품종 등을 개발해 국산 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수입 밀가루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가루쌀용 품종인 ‘바로미2’ 등을 개발해 보급을 확대하고, 안정적 생산을 위한 기술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쌀 과잉생산과 밀 수급 불안을 해소해 식량주권을 확보한다는 포석이다. 콩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밀·콩 등 이모작과 기계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생육기간이 짧아 이모작에 적합한 품종 ‘선유2호’를 개발했고, 꼬투리가 높이 달려 침수 피해가 적고 기계 수확에 유리한 품종인 ‘장풍’ 등을 2024년 보급할 예정이다.우리나라는 식량난을 경험한 국가다. 주곡인 쌀 자급을 달성해 보릿고개를 극복한 통일벼의 개발과 보급은 ‘국가연구개발 반세기 10대 성과’에서 첫 번째 성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임금님표 경기미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은 일본 품종 ‘고시히카리’와 ‘추청’은 최근 우리 품종 ‘해들’과 ‘알찬미’로 대체됐다.

식량주권은 이제 국방, 외교 못지않게 국가 존립과 경쟁력의 필수요건이 됐다. ‘통일벼’부터 ‘해들’, ‘바로미2’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구개발 경험과 역량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생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품질과 수량,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품종과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와 지원에 매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