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산분리규제 완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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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뒤섞이는 '빅블러' 시대금산분리정책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을 제한하는 제도다. 거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소유하면 그것이 재벌의 사금고화돼 무분별한 투자와 사업 확장으로 시장 지배력이 강화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투자 부실이 발생하면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는 논리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가지면 그것이 재벌의 사금고화된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금융감독과 공정거래법상 규제로서 감시와 통제가 엄격하고, 계열 금융회사 자금 유용은 거의 불가능하다. 금산분리정책의 존립 근거는 사실상 없어졌다.
금융업, 산업계 진출 허용해야시론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근 산업과 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Blur) 시대를 맞아 주요 선진국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한국도 핀테크 바람을 타고 일부 완화 조치가 이뤄져 인터넷전문은행법이 제정됐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인터넷전문은행 주식을 34%까지 소유할 수 있어 카카오뱅크, K뱅크, 토스뱅크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카카오그룹은 플랫폼을 활용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증권(매매 중개), 카카오페이 손보(보험 모집) 등 사실상 금융그룹과 비슷하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은행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총자산의 과반수가 금융업 및 금융 관련 사업에 해당해야만 금융지주회사법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시장법상 정보교류차단 규정도 적용되지 않고, 금융·비금융 플랫폼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금융 사업 확장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반면, 금융업자에게는 산업계 진출은 여전히 막혀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일반 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 5%까지, 은행과 보험사는 15%까지만 취득이 가능하다. 정보의 상호 교류가 금지돼 데이터 기반 마케팅도 제한적이다.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은 여기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자본은 운동장의 기울기가 심하다 못해 손발이 묶인 채 플랫폼기업들과 달리기 경주를 하는 셈이라고 불만이다. 그렇다고 플랫폼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전통 금융기업 수준으로 강화하라는 말이 아니다. 전통 금융기업에 대한 규제를 플랫폼기업 수준으로 완화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금융지주그룹의 지분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사모펀드(PEF) 및 벤처투자조합 등에 대한 투자, 비금융회사들과의 제휴도 가능케 해야 한다. 은행의 자회사 업종은 ‘금융위가 정하는 업종’으로 제한한 것도 풀어야 한다. 은행 고유업무(수신·여신·환 업무)와의 연관성이 존재하는 경우만 인정되고 있는 ‘부수업무’ 범위도 더 확대돼야 한다. 통신, 유통, 여행 등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플랫폼기업은 아무 제약 없이 하고 있는 업무들이다.
금융회사는 금융서비스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용 리스크 등 위험관리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오히려 금융업체의 플랫폼 사업 진출이 더 바람직한데 현재는 이것이 금지돼 있는 반면, 플렛폼 기업의 금융업 진출만 일방적으로 허용돼 있다.
금융산업의 대형·겸업화가 심화됨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등에 대한 효율적 관리도 절실하다. 금융산업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디지털 사업끼리 묶어 집중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중간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해 금융업종별 자회사 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금융허브, 금융강국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권 초기인 지금 금산분리 완화로 금융강국 도약의 첫걸음을 내디딜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