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의 딜레마…믿었던 측근이 배신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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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과 상호작용의 경제학가위바위보를 한다. 상대방이 무엇을 낼지 잠시 고민한다. 알 수는 없지만 짧은 순간 머리를 굴린다. 회사에서 신제품을 내놓는다. 소비자 반응은 어떨지, 경쟁사는 어떻게 나올지 고민을 거듭한다. 인생은 게임이다.
용의자가 모두 혐의 부인땐
가벼운 처벌로 끝나지만
상대방이 먼저 배신하면
나만 독박쓴다는 생각에
모두 자백하고 중벌 받아
기업간 담합 깨지는 이유는
배신이 '우월전략'이기 때문
가위바위보부터 회사 신사업까지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예상하며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전략적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연구한 경제학 분야가 있다. 게임이론이다.
협력과 배신 사이
게임이론의 고전적인 사례로 다양하게 응용되는 것이 ‘용의자의 딜레마’다. 검찰 수사를 받는 두 용의자가 있다.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할 만한 범죄의 증거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범죄에 대해선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다. 검사는 두 사람을 각각 다른 방에 불러 이렇게 제안한다.당신이 자백하고 공범이 부인한다면 당신은 무죄로 석방해 주고 공범에게는 징역 10년을 구형하겠다. 둘 다 자백하면 각각 징역 5년을 살게 하겠다. 둘 다 끝까지 부인하면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하겠다.
두 사람이 받을 징역형의 총량을 따져보면 둘 다 끝까지 부인해 1년씩 구형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부인했는데, 상대방이 자백한다면 상대방은 석방되고 나만 10년형을 받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그러느니 자백하는 것이 낫다. 자백하면 10년형을 받을 일은 없고, 운이 좋으면 석방될 수도 있다. 결국 두 용의자 모두 자백하고, 징역 1년씩만 받을 수 있는 선택지를 놔둔 채 5년형을 받고 만다.
카르텔이 깨지는 이유
과점 기업의 카르텔이 용의자의 딜레마와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한 도시에 빵집이 A와 B 둘뿐이고, 빵 수요가 1만 개, 균형 가격이 3000원이라고 하자. 어느 날 A와 B가 빵을 각각 5000개 만들어 개당 4000원에 팔기로 담합했다. 다음날 A 사장은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빵을 3000원에 팔면 B의 몫까지 다 차지해 매출이 확 늘지 않을까. B 사장도 같은 생각을 한다. 결국 A와 B의 카르텔은 깨진다. 이때 A와 B가 얻는 매출은 카르텔이 유지됐을 때에 비해 줄어든다.범죄 용의자든 카르텔 기업이든 협조보다 배신이 유리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의리를 지켰는데 상대방이 배신하면 내가 ‘독박’을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적당히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먼저 배신하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에게 유리한 전략을 ‘우월전략’이라고 한다.
단, 용의자의 딜레마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두 용의자가 서로 소통할 수 없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두 사람은 끝까지 자백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업들의 담합이 종종 깨지지만 장기간 유지되기도 하는 것은 기업 활동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카르텔을 지켰을 때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업은 배신보다 협조를 택할 수 있다.
북핵과 대장동 사건의 공통점
군비 경쟁을 용의자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군축 의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선 우리의 군비를 늘리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다.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은 미국과 옛 소련이 서로 보복할 수 있는 핵 능력을 갖춘 것이 핵전쟁을 막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같은 논리라면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한국의 우월전략이 된다.공유지의 비극 역시 용의자의 딜레마가 낳은 결과다. 내가 공유 자원을 아껴 쓴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아껴 쓰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들이 다 쓰도록 내버려 두느니 나도 마음껏 쓰는 것이 낫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공유 자원은 바닥이 난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대장동 사건도 용의자의 딜레마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유력한 공범의 입에서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그 사람이 지은 죄는 그 사람이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다른 용의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