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요식업, 가능할까?

[최주희의 동남아 취업하기 : 캄보디아 요식업]
“고수 빼주세요.” 캄보디아에 정착하기 전 태국이나 베트남에 놀러 가서 식당을 가면 습관처럼 했던 말이다. 세상에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렇게 냄새나는 ‘풀’을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남아 여행은 너무 재미있었지만, 음식 때문에 오래 머무를 곳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을 보낸 옛 기억이 차고 넘친다. 나에게 맞는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 더 애정이 가고, 기억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음식은 ‘의식주’의 하나 아닌가.

고수에 경기를 일으키던 내가 지금은 캄보디아 거주 9년이 되다니 나도 놀랍다. “고수 더 주세요.”이제 고수는 나의 ‘머스트잇(must-eat)’ 아이템이다. 내가 언제부터 고수를 자연스럽게 먹게 됐는지 기억에 없다. 그냥 그렇게 캄보디아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나의 친구가 되었다. 고수가 비타민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이 모기도 쫓는다는 고급 정보를 알고 난 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사람은 오래 살면서 봐야 하고, 음식은 오래 먹어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나 보다. 해외 생활을 하면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나라마다 주로 쓰는 향신료가 다르고, 조리법이 달라 미각, 후각에 예민한 사람들은 현지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야 할 기회가 많아지면 힘들어한다. 물론, 요즘은 음식의 국적을 알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나라의 식당들이 운영되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현지인과 교류하고, 사업상 미팅이 잦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소화해야 하는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은 여간 고욕이 아닐 수 없다.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까 꾹 참으며 고수를 삼킨 나의 옛날이여. 그렇게 캄보디아를 나의 정착지로 선택하고 난 후 고수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캄보디아 음식과 함께하게 됐다.
내가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북한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 당시 경험은 참 진귀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찾은 북한 식당은 내가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했다. 음식의 맛과 모양,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은 물론이고, 그런 식당의 존재 자체가 캄보디아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됐다. 지금은 2019년 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로 폐쇄된 후 소식이 없다. 베트남과 라오스에서는 북한 식당이 영업한다고 알고 있다. 다시 방문한다면 그때의 신선한 충격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음식은 문화다. 음식에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정서가 담겨있다. 내가 이곳에서 캄보디아 음식을 입에 맞지 않는다고 계속 멀리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음식을 이해하고, 저변에 흐르는 문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높아져 갈수록 나의 비즈니스도 한층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사람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매개로 연결될 인간관계가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 아니겠는가. 그래서 해외에서 취업을 하건, 창업을 하건 그 나라 사람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형성하는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 시작이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하는 음식이라면 무겁지 않고, 가볍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내가 선택한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지만, 음식 그 자체가 ‘사업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해외에서 유입된 많은 이민자, 취업자, 창업자들이 음식과 관련한 업에 종사한다. 그들이 음식에 조예가 깊은지, 요식업에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는지, 혹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양한 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 속에서 먹거리를 기반으로 일한다. 그들은 캄보디아라는 새로운 땅에 정착해서 음식을 주제로 삶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고, 그 노력은 캄보디아의 음식 문화의 영역을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캄보디아 생활 초창기에는 갈만한 한식당 찾기가 힘들었다. 한식이 그리울 때 혼자 갈 곳은 몇 군데 있었지만, 손님을 모실만한 장소가 한정적이었다. 지금은 가격도 비싸고, 고급스러운 영업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예전보다 재료의 공급망이 나아지고, 한국 분들의 사업 영역도 넓어져 동남아를 새로운 무대로 삼아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식품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치킨, 베이커리, 편의점 등과 함께 한국의 손맛을 고스란히 담은 정갈한 한식당도 있다. 세계 속에서 위상을 더해가는 한류의 힘이 우리의 음식 산업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참 기분 좋은 일이고, 우리 청년들에게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

한류가 거세고, 한국의 이미지가 더 좋아졌지만, 무작정 식당을 연다고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요식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 업의 기본은 비용구조의 이해다. 예를 들어보자. 몇 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들도 큰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초밥이나 신선한 회가 캄보디아에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초밥 식당이 여기저기 많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괜찮은 초밥 식당의 규모가 한정적이고, 가격대를 기준으로 한 선택지가 많지 않아 초밥이나 회가 고플 때 한국의 초밥 체인점이 그립기도 했다. 동남아의 기후 특성상 근해에서 잡은 생선들의 맛이 한국과 비교해 떨어지고, 신선한 횟감을 공수하고, 보관하는 게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는 조리하지 않는 생선을 먹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생선 다루는 고급 기술을 가진 조리사를 현지에서 구하기 힘들어 일식당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직접 칼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의 관련 인력풀이 넓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인건비로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비용 구조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음식에 관심이 있고, 기술이 있는 분들이라면 동남에서 본인의 가능성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이곳에 진출한 기업들을 눈여겨보거나, 현지 창업도 도전할만하다. 그것이 꼭 현지인 대상일 필요는 없다. 동남아에 진출한 기업인, 이주민, 유학생 등 다양한 체류 인구가 존재한다. 나의 업이 누군가의 일상에 힘이 되고, 그 나라의 새로운 문화 형성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을 하면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인’이 된다.

최주희 피플앤잡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