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된 비등기임원 "나는 근로자였다"…기업의 적절한 대응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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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A부사장은 유통사업 부문장으로 재임 중이다. 어느 날 A부사장이 회의, 회식 자리에서 상습적으로 다수 직원에게 폭언과 욕설 등 직장 내 괴롭힘을 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면담에서 기업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하고, 만약 조치가 늦어진다면 노동청 신고는 물론 언론 제보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욱 변호사의 '인사兵法'
A부사장은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권과 대표권을 가진 대표이사 사장에 보고를 하며, 이사회 구성원인 등기이사는 아니다. 그러나 통상 직원과 확연히 구별되는 강력한 업무 권한과 높은 직위를 누리고 있다. 즉,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속칭 '비등기임원'이다. 이러한 비등기임원의 비위행위에 대한 대응은 Δ불이익 조치에 관한 당사자의 수용 정도 Δ기존 관행과 사내 규정 등 제도적 요인 Δ법상 보호의 차이 등으로 인해, 통상 직원의 비위행위 대응에 비해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이번 기고에서는 비등기임원 비위행위 대응을 맡은 기업 인사·법무 담당자가 알아두면 좋을 원칙을 A부사장 사례를 이용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대응 초기부터 A부사장의 법적 지위(근로기준법 보호를 받는 근로자인지, 위임관계상 수임인인지)에 대한 분쟁 위험을 평가한 바탕 하에서 신중하게 기본 입장을 정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기업은 임명할 때부터 비등기임원을 통상 직원과 처우, 지위, 의무,책임 등 대부분의 점에서 별도 체계를 만들어서 관리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으로 비위행위 대응에 있어서도 근로자인 통상 직원에 허용되는 절차나 지위상 보호가 수임인인 비등기임원에게 그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A부사장을 해임하면서 Δ정식 소명기회를 주지 않고 해임 통지를 대표이사 면담시 구두로 하는 등 근로기준법과 취업규칙상 절차를 따르지 않거나 Δ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무관용 원칙, 기업 평판 위험 방지를 앞세워 신고의 진위와 증거를 엄밀히 확인하는 정식 조사를 생략하는 것이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등기임원이 해임 등 불이익 조치를 받은 후 불복해 법적 분쟁이 생기는 경우, 좀 과장을 보태면 '열이면 열' 본인이 근로자이고, 근로자에 허용되는 절차, 지위상 보호를 누리지 못하였으니 기업의 불이익 조치가 무효라는 주장을 한다. 사례에서라면 취업규칙상 정한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은 점, 근로기준법에 정한 서면 통지를 하지 않은 점, 해임에 정당한 사유 입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해임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물론 기업은 Δ임용 경위(“유통 전문성을 보고 유통사업 경영책임자로 특별 임용했다”) Δ권한(“유통사업을 총괄하며 독립 운영했다”) Δ처우(“일반 직원보다 현저히 높은 보수와 자동차, 스포츠회원권 제공 등 혜택을 받았다”)를 근거로 A부사장은 근로자가 아닌 수임인이라고 대응할 것이다. 실제 대기업에서 한 부문을 총괄하는 업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한 비등기임원(상무)은 수임인이라고 인정된 대법원 판결도 있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2다10959 판결).
그러나 이러한 임용 경위 등은 기업과 비등기임원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비등기임원 근로자성을 부인한 대법원 판례가 있고, 해당 판례의 사실관계와 사안이 유사하더라도 곧바로 A부사장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또 비등기임원에게는 근로자 주장 근거가 될 요소가 혼재하기 마련인데(다른 직원과 함께 교육을 받거나, 모회사나 대표이사 사장에게 상시 보고를 하거나 일부 중요 업무의 사전 승인을 받는 등), 그 점을 A부사장이 주장하면 근로자 요소와 수임인 요소 중 어느 편이 주인지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이러한 까닭에 비등기임원의 법적 지위에 대한 법적 분쟁 결과는 보통 예상이 어렵고, 법원 판단에 불복하면서 분쟁이 장기화 되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다. 위 인용한 대법원 판결 사례에서도 원심은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었다.
그렇다면, 기업이 A부사장의 비위행위 대응시 통상 직원에 허용되는 절차, 지위상 보호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별 생각 없이 따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기업은 아래 대응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우선 A부사장을 통상 직원과 구별해서 처리해 왔는지 제도와 관행을 확인한다. 예컨대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사내 규정상 비등기임원과 통상 직원을 구별하고, 실제 비등기임원 해임시 통상 직원과 다른 절차를 밟아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 결과 그러한 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었다고 판단된다면, 그럼에도 A부사장이 수임인인지에 대한 다툼 여지는 완전히 없앨 수는 없으나 기업은 “A부사장은 수임인이다. 단, A부사장에 근로자에 준하는 보호를 부여하여 최대한 공정을 기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입장에서는, 근로자와 유사한 정도의 보호를 허용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사내 규정상 정한 바가 있다면 그에 따라, 없다면 이사회나 임원회의 혹은 징계위원회와 유사한 구성을 갖춘 임시위원회를 열어 소명 기회를 준다. 해임 등의 사유와 시기를 서면 통지한다. 이 때 사유로는 조사를 거쳐 확인된 직장 내 괴롭힘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향후 분쟁에서 “A부사장이 근로자라 해도 해임 등의 조치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이와 달리, 비등기임원과 통상 직원을 구별 처리하는 제도와 관행이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면, 한층 더 안전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 때 기업의 입장은 “A부사장의 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근로자와 동일한 절차, 지위상 보호를 부여한다. 따라서 설령 A부사장이 근로자라도 불이익 조치는 정당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A부사장을 대응 목적상으로는 근로자로 간주하고 절차를 밟는다. 통상 직원과 동일하게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소명 기회를 부여하며, 해고 서면통지를 한다. 해임 등의 사유를 취업규칙상 징계사유에 대응하도록 구성한다. 해임 등의 조치에 상응하는 징계사유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를 더욱 철저히 진행하고,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조사기간도 늘린다.
단, 이 경우에도 기업은 A부사장을 대응 목적상 근로자로 간주하는 것이지, 법적 지위가 수임인이라는 주장을 유지함이 대체로 적절하다. 제도와 관행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을 뿐, 기업 내에서는 A부사장과 통상 직원의 법적 지위가 구별된다고 인식함이 보통일 것이다. 무엇보다 A부사장을 근로자로 인정하면 기존 인사 정책과 정합성이 문제 될 위험이 있다. 기업은 이 점까지 고려하여 대응해야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