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 야쿠자 된 재일 조선인의 비극…'장항준식 터치'로 희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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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초연…장 감독 첫 연극일본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다 야쿠자가 돼 버린 어느 재일 조선인 이야기.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의 줄거리다. 언뜻 보면 우울한 내용이지만 공연은 웃음이 넘친다. 걸출한 입담과 유머를 자랑하는 영화감독 장항준이 어두운 역사의 비극을 유쾌한 희극으로 솜씨 좋게 바꿔놓은 덕분이다.
재일 조선인 아픔 담아
춤·노래로 슬픔 유쾌하게 풀어
1일부터 서울 동숭동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사나이 와타나베’는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했고 방송인으로도 활동 중인 영화감독 장항준의 첫 번째 연극 작품이다. 작품이 처음 관객을 찾아간 것은 2010년이었다. 장 감독은 ‘감독, 무대로 오다’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극본을 썼고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장 감독은 1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사나이 와타나베’에서 예술감독으로 참여한다. 황희원 연출가와 오세혁 작가가 요즘의 감성을 반영해 일부 각색했다.연극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본인의 인생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을 다룬다.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 빈민가에서 태어난 와타나베는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야쿠자의 공격에 죽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면서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다 야쿠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며 영화감독 만춘을 일본으로 초대한다.
연출의 특징은 극 안에서 또 다른 극이 펼쳐지는 극중극이다. 와타나베가 자신의 무용담과 인생 이야기를 독백으로 설명할 때 뒤에서 다른 배우들이 설명 그대로 해당 장면을 연기하는 식이다. 와타나베가 ‘이 장면은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만춘이 ‘너무 과하다’며 말리는 등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묘사된다. 동시에 와타나베의 인생에 담긴 아픔과 회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이 여운을 남긴다.
춤과 노래도 곁들인 연극이다. 가수 조용필의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제주 민요 ‘너영 나영’ 등이 나온다. 재일 조선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노래들이다. 노래에 맞춰 배우들이 경쾌한 탭댄스를 추는 장면도 있다.주인공 와타나베 역은 배우 서현철 손종학 유병훈 등이 맡았다. 영화감독 만춘 역은 기세중 유수빈 임진섭 등이 연기한다. 와타나베의 부하 ‘마사오’와 ‘히데오’ 역에는 각각 신창주 임진구, 정다함 조은진 등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내년 1월 15일까지. 러닝타임은 90분.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