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경찰 부실대처에 격앙…"진상 밝혀라"

이태원 112 신고 내역 보고 받아

"법·원칙 따라 엄정 처리" 지시
참모들 "경찰 믿기 어렵다" 반응
'추모' 강조한 정부·여당 당혹

尹, 국무회의서 "주최 따지지말고
모든 부처가 안전대책 세우라"
국가안전 시스템점검회의도 신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오전 국무회의에 앞서 경찰청이 제출한 ‘이태원 사고 이전 112 신고 내역’을 보고받고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내역엔 시민들의 다급한 호소에도 경찰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은 바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모들 사이에서는 “경찰을 믿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112 신고 내역이 대통령실에 보고되면서 사고 수습과 국가적인 애도에 집중했던 정부의 대응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오전 11시30분께 서울 미금동 경찰청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후 2시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공식 사과했다.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은 입장문을 통해 “매우 송구하다”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고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12 신고 내역 공개로 정쟁이나 책임 추궁보다는 사고 수습과 위로, 애도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해온 여당의 입장도 무색해졌다”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날만 해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추궁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질책성으로 들리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첫머리 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이 중요하지 행사 주최자가 있느냐 없느냐는 따질 것이 아니다”며 “모든 부처가 안전의 주무부처라는 각별한 각오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관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점검하라”고 지시했다.이는 경찰청의 보고가 이뤄지기 전날 나온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고 예방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온도 차가 있다. 사고의 주요 원인을 제도적 허점 탓으로 돌리는 관계 부처를 강하게 질책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회의에선 “안전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돼 있다”며 “구체적 위험을 인지한 뒤 통제를 시작하면 늦다. 자치단체와 경찰이 권한과 책임을 구분할 게 아니라 미리미리 협업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관계 부처 장관과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회의를 신설키로 하고 이르면 다음주 첫 회의를 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끝난 뒤 국무위원들과 함께 서울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조문록엔 “슬픔과 비통함 가눌 길이 없습니다. 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윤 대통령은 늦은 오후엔 사망자 빈소 두 곳을 찾아 조문했다. 경기 부천의 한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아버지 손을 붙잡고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는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은 유가족을 만나 애도했다.

좌동욱/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