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들이 안타까워…시민들은 '조용한 귀가'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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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후 회식 취소 잇따라핼러윈 당일인 지난달 31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골목. 밥집과 술집이 일렬로 꽉 들어찬 먹자거리의 분위기는 삼삼오오 시끌벅적한 평소와 달리 가라앉아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는 손님 서너 명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등 벌써 장사를 마감했다. 횟집 사장 정모씨(64)는 “오늘 예약 5건 중 4건이 취소됐다”며 “다들 추모하는 분위기에 동참하려 한다니, 빨리 집에 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공덕역 횟집 예약 80% 취소
'핼러윈 상권' 홍대도 주말 한산
직장인 "추모 마음으로 생활"
상인 "장사보다 희생자 걱정"
사고 발생 후 유족 발인 시작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길…"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일어난 뒤 한 주의 일상이 다시 시작됐지만 추모 분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회식이 취소되고, 음주 모임이 대다수 사라지면서 저녁 길거리가 한산해졌다.
침묵…애도로 가득 찬 거리
시민들은 저녁 시간 귀가를 서두르며 조용한 일상을 유지했다. 반도체 제조 중견회사에 다니는 김상길 씨(30)는 31일 저녁 예정돼 있던 회식을 취소했다. 김씨는 “주말을 보내고 직장에 돌아와선 다들 마음이 무겁게 이태원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웃고 떠드는 회식은 안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직장인이 집중적으로 찾는 주요 상권도 적막에 휩싸였다. 소수로 모이는 개별 모임보다 주로 단체 회식이 취소되면서다. 공덕역 인근의 한 고깃집은 이날 오후 9시 25개 테이블 중 3개 테이블만 찼다. 사장 김모씨(49)는 “하루에 60~70명 정도 오는데 오늘은 반의반도 안 됐다”며 “희생자들과 함께해야 할 고생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다양한 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번화가 역시 차분한 분위기를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4년째 생맥주집을 운영하는 배모씨(43)는 핼러윈을 맞아 매장에 걸어둔 화려한 인테리어 용품을 모두 철거했다. 배씨는 “오늘 매장을 찾은 손님 수는 지난주 월요일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진 않았다”면서도 “손님들이 평소보다 차분한 분위기여서 매장도 신나는 음악보다는 조용한 음악으로 바꿔서 틀고 있다”고 말했다.
핼러윈 핵심 상권 홍대도 ‘차분’
이태원과 함께 ‘핼러윈 특수’를 누리는 상권으로 분류되는 홍익대 인근 상권도 핼러윈 당일인 31일 저녁 예상보다 거리가 한산했다.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인형 노점을 운영하는 고모씨(54)는 “노점들이 사람이 없다보니까 대부분 오후 8~9시에 장사를 접고 들어가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수준으로 장사가 안됐다”고 말했다.올해 홍대 거리에는 분장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각종 코스튬 차림의 사람들로 가득 찼던 예년 핼러윈 광경과는 대비되는 분위기였다. 홍대 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지민 씨(28)는 “코스튬을 한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행인들이 그 사람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고 말했다.“이런 일 꿈에서도 생각 못해”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1일 일부 유족은 발인을 시작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유족과 지인들은 슬픔에 잠겼다. 이날 오전 8시께 경기 부천성모병원에선 이번 사고로 희생된 20대 여성 A씨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족 측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사고가 난 것을 알았지만 설마 우리 얘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뒤늦게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인을 안치할 추모공원으로 이동한 유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같은 시간 경기 성남시의료원 장례식장에서는 30대 남성의 발인이 행해졌다. 운구자가 고인의 관을 옮기자 유족과 지인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채 유족들은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이날 오후 3시 기준 이번 이태원 참사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총 156명. 위독한 중상자가 있어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민기/이광식/권용훈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