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태원 부실대응 수사…용산서장 대기발령, 8곳 압수수색
입력
수정
지면A25
서울청·용산구청·이태원역 포함이태원 참사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경찰이 강제 수사에 나섰다. 경찰청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가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를 포함한 8개 기관에 대해 압수수색했다. 참사 직전 112 신고 전화 공개로 경찰 책임론이 확대되자 경찰이 ‘강제 수사’를 내세워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파출소 등 일선부터 책임 물을 듯
이례적으로 신속 대응?
특수본 가동 하루 만에 결정
책임론 확산에 서둘러 움직여
참사 인지 늦었던 경찰 수뇌부
경찰청장, 2시간 뒤 첫 보고받아
대통령실보다 늦어…대처 미흡
신고 11건도 수사·감찰 돌입
경찰청 직속 특별감찰팀도 가동
경찰청 특수본은 2일 오후 2시께 서울청과 용산서를 압수수색했다. 핼러윈 경비 계획 문건 등 행사 안전에 관한 사전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참사 당일 112 신고 등 현장 대응에 어떻게 나섰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수본은 이외에도 용산구청,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서울종합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다산콜센터, 이태원역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경찰청은 참사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이날 대기발령 조치했다. 후임은 임현규 경찰청 재정담당관으로 정해졌다.경찰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수본은 참사 직후 설치된 서울청 수사본부를 지난 1일 경찰청 소속으로 지위를 격상시켰다. 이후 하루 만에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수본은 소속 기관인 경찰청과 국가수사본부에 보고 의무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경찰청은 특수본과는 별도로 지난 1일 경찰청 직속 특별감찰팀도 설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자 한다”며 “특별감찰팀의 감찰은 범죄화가 인정된다면 수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경찰의 재빠른 반응은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경찰은 압사 위험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가 총 11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중 4건만 현장 대응을 했고, 나머지 7건은 출동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이 빗발쳤다. 시민단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경찰에 대한 외부 기관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지기 전에 자체적으로 책임진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경찰 조직 핵심보다는 이태원파출소, 용산서, 서울청 등 외곽부터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무정차 통과 등 진실공방 쟁점도 수사
특수본과 감찰팀은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여러 현안을 동시에 다룰 전망이다. 가장 주요하게 꼽히는 쟁점은 경찰 조직 내 보고 시간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9일 참사 당일 오후 11시36분에 이임재 용산서장으로부터 참사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다. 이후 윤희근 경찰청장은 30일 오전 0시14분에서야 소식을 접했다. 오후 10시15분이었던 첫 신고 시간으로부터 1시간59분이 지난 시점이다. 소방청 상황실이 대통령실에 보고한 오후 10시53분보다 늦다. 경찰 조직 내 보고 지연으로 초동 대처가 미흡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참사 직전 11건의 112 신고 접수 건에 대해서도 수사와 감찰에 들어간다. 현장 출동한 4건과 출동하지 않은 7건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11건의 신고가 누적됐음에도 왜 용산서 상황실에서의 종합 대응이 아니라 이태원파출소에서의 개별 대응에 그쳤는지, 참사 지점이었던 이태원 119의 7에서 반복된 신고가 있었음에도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등 여러 의문점을 다룰 예정이다.특수본은 경찰이 서울교통공사에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는지, 이태원 상인회가 경찰에 축제 현장 통제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는지 등 이번 참사와 관련해 책임기관 간 벌어지고 있는 진실 공방 쟁점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구민기/이정호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