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황석희, 가정사 고백한 이유

"명확한 원인 및 책임 규명·사후 조치 있어야"
"유족이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 상 종결 줘야"
번역가 황석희 /사진=SNS
영화 '데드풀', '스파이더맨' 등에 참여했던 번역가 황석희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황석희는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가족 잃은 자를 위한 종결'이라는 문구가 적힌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그는 "'giving them a closure'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종결을 주다'라는 뜻인데 사법의 영역에선 관계 당국이 범인을 잡아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여 피해자, 혹은 유가족에게 일종의 ‘맺음’을 주는 것을 말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7년 전, 아버지는 차를 몰고 정차 후 좌회전하려다 좌측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던 차와 추돌했다"며 "아버지는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즉사였다. 조수석에 있던 어머니는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고 가정사를 고백했다.

황석희는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오히려 얼굴만 맞대면 싸우는 견원지간 같았지만 이런 식의 이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던 장례, 그 와중에 날 가장 황당하게 한 것은 아버지에게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는 거다. 상대 차량은 피해 정도가 경미했다. 부상자도 없었다. 그런데 직진 우선이라는 원칙 하나로 아버지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그는 "이런 맺음은 인정할 수 없었기에 재판을 청구했고 2년을 법정에서 싸웠다. 하지만 결론은 상대방 과실과 교통부의 과실을 아주 일부 인정받았을 뿐이다. 주황색 등이 깜빡이는 길이었음에도 과속과 전방 주의 태만을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어머니와 분담해서 좌우를 면밀히 살피고 출발하는 대화가 녹음된 블랙박스, 3m에 가까운 커다란 간판과 큰 나무가 시야를 막고 있는 가운데 볼록 거울도 없었던 정황 등이 있었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다만 황석희는 "항소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시스템이 주는 종결은 받았다. 그 길 좌측의 간판과 나무가 모두 제거됐고 볼록 거울이 생겼고 내리막길엔 과속 방지턱과 과속 방지 카메라가 설치됐다"면서 "불만스럽더라도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의 종결. 그 결과를 받고서야 아버지 차를 폐차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2년 동안이나 사고 차량을 폐차 처리하지 못했다는 그는 "그 족쇄 같던 차를 종결을 받은 후에야 간신히 폐차했다. 그게 내겐 맺음이었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맺음이 없다. 지금도 사고 차량이나 전복 차량을 보면 공황이 온다.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와서 빨리 내 차를 갓길에 세운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남겨진 자의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납득할 수 있는 종결을 주는 것"이라며 명확한 원인과 책임 규명, 사후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석희는 "유가족에겐 저런 시스템상의 종결이 완전한 종결이 되지 못함을 너무나도 잘 안다. 다만 그런 종결이라도 있어야 개인적인 맺음을 향한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며 "그들에게 종결을 줘야 한다. 맺음하고 비로소 진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종결을 줘야 한다"고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