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이 빚어낸 관(管)과 현(絃)의 '환상 하모니'[송태형의 현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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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첫날
마에스트로 벨저-뫼스트 지휘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등 연주
빈필 특유의 '황금빛 사운드' 빛나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스트리아 지휘 거장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는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울리는 음악의 한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2022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의 첫날 공연 현장입니다.
본 공연에 앞서 특별 연주곡으로 현악 파트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연주됐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곡입니다. 고요하고 가녀리게 흐르는 아름다운 현악 선율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단원 대표인 다니엘 프로샤우어 제1 바이올린 수석의 사전 제안에 따라 연주가 끝난 후 관객은 박수를 치지 않았고, 지휘자와 단원들은 모두 약 1분간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습니다.숙연한 분위기 속에 1부 프로그램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입니다.두 곡을 끊김 없이 마치 한 곡처럼 이어 연주한 게 특이했습니다. 전주곡의 ‘성배’ 모티브가 점점 여리게 끝맺자마자 마치 악보에 ‘아타카(attacca)’라도 쓰여 있는 것처럼 ‘죽음과 변용’의 여린 ’죽음의 모티브‘가 이어졌습니다. 두 작품의 주제의식과 악기 편성, 두 작곡가의 관현악 어법이 비슷해서 그런지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과 변용’에서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진가를 드러냈습니다. ‘파르지팔’ 전주곡 연주가 평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죽음과 변용’ 연주가 비범했습니다. 벨저-뫼스트는 공연 약 한 달 전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 곡과 빈필 간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지휘자로서 이 곡을 빈필과 연주했다”며 “이 작품을 빈필의 사운드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부에서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기어를 바꿔 달았습니다. 무겁고 장중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1부 레퍼토리와는 결이 다른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헤미안 색채가 물씬 풍기는 활달하고 역동적인 교향곡입니다. 빈필의 ‘젊은 피’들로 채워진 목관 수석 진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니엘 오텐잠머(클라리넷·36)-세바스찬 브라이트(오보에·24)-뤽 망홀츠(플루트·27)-루카스 슈미트(바순·27)’ 입니다. 10년차인 오텐잠머를 제외하고 모두 1~2년차 새내기들입니다.
벨저-뫼스트와 빈필은 4일 둘째 날 공연에서는 전날과 전혀 다른 색채의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합니다. 1부에서는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2부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려줍니다. 이들이 모두 장기로 삼고 있는 곡들이어서 전날 못지않은 ‘교향’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