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가을 입술, 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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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원시]
가을 입술
유은정
붉은 잎이
립스틱 바른 입술 같아서
가을이 하는 말
들을 수 있을까봐
살짝 귀 대어 봅니다[태헌의 한역]
秋脣(추순)
枝端一紅葉(지단일홍엽)
恰似口脂脣(흡사구지순)
或可聽秋語(혹가청추어)
輕輕着耳輪(경경착이륜)
[주석]
· 秋脣(추순) : 가을 입술.
· 枝端(지단) : 가지 끝.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一紅葉(일홍엽) : 하나의 붉은 잎. 이 대목의 ‘一’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恰似(흡사) : ~과 흡사하다, ~과 같다. / 口脂脣(구지순) : 립스틱을 바른 입술. ‘口脂’는 입술연지, 곧 립스틱이나 루즈를 가리키는 말이다.
· 或可(혹가) : 어쩌면 ~을 할 수 있을 듯하다. / 聽(청) : ~을 듣다. / 秋語(추어) : 가을의 말, 가을이 하는 말
· 輕輕(경경) : 가볍게, 살짝. / 着(착) : ~을 대다, ~을 부착하다. / 耳輪(이륜) : 귀. 현대 중국어에서는 귓바퀴라는 뜻으로 많이 쓰나 한문에서는 ‘耳’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한역의 직역]
가을 입술
가지 끝에 붉은 잎 하나
립스틱 바른 입술 같아서
가을의 말 들을 수 있을까봐
살짝 귀를 대어 봅니다
[한역노트]
역자는 이 시를 처음 본 순간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리차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이 연주한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피아노곡을 떠올렸다. 이 연상(聯想)은 당연히 “가을이 하는 말”이라는 시구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이즈음만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선율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가을의 속삭임>이라는 사실도 이유의 하나로 들 수 있을 듯하다. 역자가 학창 시절에 엄청 즐겨들었던 관계로 연주곡 전체의 멜로디를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지만, 역자 스스로의 생각에도 웃기게 수십 년을 들어온 그 연주곡의 원제목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역자는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해도 “Amor”가 사랑이라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아왔기 때문에, 찾아보거나 물어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원제목 “A Comme Amour”를 “사랑의 속삭임” 정도로 이해하고는 가을에 사랑을 속삭이기가 좋을 터라서 번역을 “가을의 속삭임”으로 했나 보다고 생각해왔더랬다. 이런 막연한 생각과 그런 안일한 태도가 얼마나 멍청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항간의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스스로 확인한 계기가 되었으니, 올 가을 수확이 영 흉작은 아닌 듯하다. 역자를 웃프게 만든 “A Comme Amour”의 정확한 뜻은 각자 해결해 보시기 바란다. ^^각설하고, 이 시는 SNS 동호회에서 알게 된 유은정 시인의 작품이다. 역자가 금년 2월에 시인의 시 “빨랫줄”로 칼럼을 한번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가 서울시에서 공모한 지하철 시에 당선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시인이 작성한 이 디카시를 보고 마침내 칼럼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으니,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이 시의 칼럼에는 지하철 시에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얼마간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자는 이 시를 감상하면서 제목에 쓰인 “가을 입술”이라는 말에 오래도록 눈길을 머물려 두었다. 시인이 표현한 가을 입술은 가을철 사람의 입술이 아니라 립스틱을 바른 여인의 입술 모양을 닮은, 붉게 물든 낙엽이 바로 가을의 입술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가을이 하는 말”이라는 대목에도 눈길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말이란 혀와 함께 입술을 움직여 만드는 것이므로, 시인은 그 ‘입술’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가을의 말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 ‘가을 입술’이 서성이던 바람에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듯하다면 당연한 수순으로 귀를 기울여 들어줄 필요가 있다. 시인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귀를 대어본다고 했을 것이다.
가을은 시인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었을까? 그리고 시인이 가을의 입술을 통해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이는 온전히 독자가 상상해야 할 몫이 되고 말았다. 기실 이 상상이라는 작업은 독자가 시인의 심사를 읽는 일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남겨준 상상이라는 빈 종잇장은 결국 우리들에게 내준 일종의 숙제가 되는 셈이다. 이 숙제에 나름대로 답안을 작성해 보는 것이, 이 가을을 멋있고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역자 생각에는 가을이, 이렇게 빛나는 계절에 너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 너는 무엇을 열매로 성숙시켰느냐? 라고 질문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가을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말은 여물수록 고개 숙이라는 것일 듯하다. 성숙했다고 교만을 떨 것이 아니라, 여물어 고개를 숙이는 저 들녘의 곡식들처럼 겸손하라는 뜻이지 않을까 싶다. 겸손이 빠진 성숙은 결단코 진정한 성숙이 아닐 것이다.
이 빛나는 계절에 성숙은 고사하고 저마다 하늘로부터 받은 인격의 들[野]을 엎어버리거나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얼마간의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무리들 가운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불행이자 시대의 불행이다. 이 빛나는 계절에게서 겸허함을 배울 수 없다면, 그의 불타는 혀가 현란한 언어를 저녁놀처럼 토해내더라도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 역시 가을 입술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하나일 것이다.
이 시에는 우리들이 정보를 취하는 절대적인 통로가 되는 ‘보기’와 ‘듣기’가 다 있다. 그리고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듣기에 방점을 찍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실은 선행된 ‘보기’가 있었기 때문에 후속되는 ‘듣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뭇잎을 입술로 여긴 ‘보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귀를 댄다는 ‘듣기’가 가능했겠는가? 이 대목에서 역자는, 그 옛날에 주자(朱子)께서 “눈을 열어 사물을 보고,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開眼看物 着耳聽聲]”고 한 말씀을 고요히 떠올려 본다.
역자는 5행 2연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절구(五言絶句)로 재구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부득이 몇몇 시어를 보충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脣(순)’과 ‘輪(륜)’이다.
2022. 11. 8.<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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