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 후 술집서 놀았는데…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먹먹한 상담기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편지를 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압사 참사' 생존자가 상담치료를 받으며 그 과정을 기록한 글이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다.

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여러 사이트에는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빠르게 퍼졌다.이 글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 환자로 분류된 후 치료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A씨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압박이 갑자기 심해져 발이 (땅에) 안 닿았던 것도 맞지만, 숨쉬기가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옆 술집 난간에서 끌어주셨고, 술집에서 문을 열어줘 대피해서 잘 살아남았다"고 적었다.

이어 "밤 10시40분쯤부터는 '아 살았다. 이제 그럼 술 먹고 놀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던지라 참사 생존자로 분류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자책했다."아무래도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A씨의 말에 정신과 의사는 "아니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게 맞다.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A씨는 사고 현장 인근의 술집과 식당 직원들 모두가 구조를 도왔는데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상인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욕하는 것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꼈으며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A씨는 죄책감이 커 보인다는 의사의 말에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이 좀 징그럽다"고 털어놨다고 썼다.그는 사고 당일 밤 구출된 후 참사를 인지하기 전까지 친구들이 건네준 술을 마시고 신나게 춤을 췄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몰랐다. 신나게 놀던 우리 뒤로 구급요원이 들것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는 걸.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죄책감이 아니라 제 자신이 징그러운 인간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술 많이 먹고 싸움이 났나 보다 생각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분이 생각난다. 그분의 친구분이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술 먹고 쓰러진 사람인가 보다 하고 그냥 왔다. CPR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구조를 돕지 못했던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A씨의 담당 의사는 "원래 술 먹고 노는 곳인데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큰 사고 현장에서 살아돌아와 다행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같이 살아나온 친구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태원에 가지 않은 척 혼자 방에 들어가 울고 있다며 "친구가 제발 전화상담이라도 받아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A씨는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이태원역 추모공간을 찾은 일화도 전했다.의사는 "충분한 애도를 못해서 그럴 수 있다"며 추모를 권했다고 한다. 망설임 끝에 용기내어 이태원역을 찾은 A씨는 "편지를 쓰고 붙이고 헌화를 하고 절을 두번했다"며 "속으로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누구에게든 베풀게요' 외쳤고, 마음이 많이 풀렸다"고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