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 개판이냐"…정치권 집어삼킨 '文 풍산개' 진실공방

때아닌 '풍산개 진실 공방'

與 "文, 사룟값 아까워 파양"
文측 "대통령실이 반대하는 듯"
대통령실 "전적으로 文측 판단"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북한에서 온 풍산개들. / 사진=청와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풍산개 3마리가 7일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들을 국가에 반환하게 된 경위를 두고 문 전 대통령 측과 정부·여당이 때아닌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다. 이태원 참사 관련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 등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한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 "웬 개판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날 행정안전부와 문 전 대통령 비서실 등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 측은 지난 5일 오전 행안부에 '퇴임과 함께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갔던 풍산개들을 국가에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현 정부가 매월 약 250만 원에 해당하는 '개 관리비' 지원에 난색을 보이자, 더 이상 위탁 관리를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을 향해 '개 사룟값을 아까워한다', '견사구팽' 등의 비판을 내놨다. 권성동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법령이 미비했다면 애초에 강아지를 데려가지 말았어야 했고, 데려갔으면 좀스럽게 세금 지원을 요구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어떤 핑계를 내놓아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사룟값, 사육사 비용 등을 세금으로 지원받지 못하니까 강아지를 파양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김기현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태원 사고로 책임자 문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대책 마련에 온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때 개 사룟값 문제로 전직 대통령이 소환되는 건 안타깝다 못해 어이없는 코미디다. 이 상황에서 웬 개판이 벌어지는 거냐"며 "김정은을 계몽 군주로 받들면서 그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던 정권이 저질러놓은 가짜 평화 쇼 때문에 나라 안보가 위태로운 판국에, 김정은의 풍산개가 뭐 그리 자랑스럽다고 국민 세금으로 키워야 하나. 정부가 아니라 김정은에게 도로 가져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왼쪽), 권성동 의원. / 사진=연합뉴스
반면 문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실의 반대로 인해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게 됐다'는 취지의 반박을 내놨다. 현 정부에서 당초 문 전 대통령에게 풍산개 관리를 위탁했고 이에 따른 근거 규정 마련도 약속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져 왔다는 주장이다.문 전 대통령 비서실은 이날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하겠다고 밝히면서 "위 풍산개들은 법적으로 국가 소유이고 대통령기록물이므로 문 전 대통령 퇴임 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됐으나, 대통령기록관에 반려동물을 관리하는 인적·물적 시설과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반려동물의 특성까지 감안해, 대통령기록관 및 행안부와 문 전 대통령 사이에 그 관리를 문 전 대통령에게 위탁하기로 협의가 이뤄졌다"며 "보도된 바처럼 윤석열 당선인과의 회동에서도 선의의 협의가 있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이후 대통령기록관과 행안부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명시적 근거 규정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고, 행안부가 지난 6월 17일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 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이의 제기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후 행안부가 일부 자구를 수정해 다시 입법예고 하겠다고 알려왔으나, 현재까지 진척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게 문 전 대통령 측 설명이다. 비서실은 이와 관련해 "역시 대통령실의 반대가 원인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비서실은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대통령기록관과 행안부의 입장과는 달리 대통령실에서는 풍산개의 관리를 문 전 대통령에게 위탁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듯하다"며 "그렇다면 쿨하게 처리하면 그만이다. 대통령기록물의 관리 위탁은 쌍방의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므로 정부 측에서 싫거나 더 나은 관리 방안을 마련하면 언제든지 위탁을 그만두면 그만이다. 정이 든 반려동물이어서 섭섭함이나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위탁관계의 해지를 거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 사진=청와대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문 전 대통령 측의 풍산개 반환 의사는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이라고 일축했다. '대통령실이 풍산개 관리비 지원을 위한 시행령 개정에 반대했다'는 문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이날 "문 전 대통령 측에서 풍산개를 맡아 키우기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실이 반대해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해당 시행령은 대통령기록관 소관으로서, 행안부, 법제처 등 관련 부처가 협의 중일 뿐, 시행령 개정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관계부처가 협의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로서, 시행령 입안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것은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일 뿐, 현재의 대통령실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간의 관심을 모은 풍산개는 2018년 9월 18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렸던 3차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가 당시 문 대통령 부부에게 풍산개 한 쌍의 사진을 보여주며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같은 달 27일 우리 정부가 판문점을 통해 받았다. 수컷 송강은 2017년 11월 28일, 암컷 곰이는 2017년 3월 12일 각각 풍산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곰이와 문 전 대통령이 기르던 풍산개 '마루' 사이에서 새끼 7마리가 태어났고, 이 중 6마리는 입양됐다. 청와대에 남은 '다운이'는 부모견와 함께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로 내려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