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목소리가 있다면 그게 詩"…평론가가 쓴 25편 시에 대한 에세이

신형철 4년만 신작

공무도하가·봄밤 등 동서고금 시
번역 의도까지 직접 물어 설명도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고 시를 읽었어요.”

최충식
문학평론가 신형철(사진)이 4년 만에 새로운 책 <인생의 역사>를 내놓자 독자들은 온라인 서점에 이런 반응을 남겼다. 비평가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인생의 역사>는 신 평론가가 ‘공무도하가’, 김수영의 ‘봄밤’,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73’ 등 동서고금의 시 25편을 읽고 쓴 책이다. 한국 단색화의 상징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 표지를 장식했다.

책의 성격은 에세이와 평론의 중간 어디쯤이다. 시 평론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 경험과 시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녹아 있고, 단순히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시에 대한 해석이 전문적이다. 한국어로 옮긴 외국 시를 읽을 때는 번역가에게 특정한 단어를 고르게 된 이유를 물어서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읽은 뒤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전하는 말을 썼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브레히트의 시는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연인의 말을 들은 이후 빗방울을 맞는 일조차 조심하며 산다는 내용이다. 나의 존재가 필요한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 그게 곧 사랑이라는 걸 신 평론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래서 내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죽지도 못했어.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에세이와 평론을 오가는 글쓰기는 두터운 팬층을 남겼다. 신 평론가는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등을 내며 흔치 않게 문단과 일반 독자 모두에게 주목받은 ‘스타 평론가’다. <인생의 역사> 역시 출간하자마자 주요 온라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다. ‘신 평론가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고 시를 읽었다’는 댓글도 팬덤의 대표적 사례다. 신 평론가는 언제가 영화전문기자의 평론집에 ‘당신처럼 써보고 싶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추천사를 쓴 적이 있다. 이를 기억한 팬들이 패러디를 한 것이다.이번 책은 시에 대해 썼지만 결국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신 평론가는 책 머리말에서 “인생에게 육성(肉聲)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생’이 무언가 소리를 내고 싶다면 시라는 형식을 이용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책을 읽다 보면 가을날 신 평론가와 나란히 걸으며 시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