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잊고 싶은 고통을 없애드립니다"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악성 댓글로 시달리는 아역모델 돕고자 시작
개인,기업,공기업부터 언론사까지 의뢰하기도
"문해력 있으면서 공감능력 뛰어나면 적합"
“온라인에 남겨진 고통을 없애드립니다.”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는 “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시작했던 디지털 기록 삭제 서비스를 14년간 이어온 것은 운명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늘 하루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흔적들이 온라인에 남았다. 때론 블로그의 형태로, 때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형태로… 무심코 남긴 기록은 삶의 일상에 불쑥 찾아와 괴롭히는 불편한 존재가 되기도한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기록때문이다. 온라인의 남겨진 기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디지털 장의사'다.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의뢰인의 불편한 디지털 기록을 지워 주는 직업이다. 한경 잡아라 기자단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산타크루즈컴퍼니 본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이색적인 직업 때문인지 김 대표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 온더블럭에도 출연한 바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내 운명

김 대표는 본래 연극 배우 출신이다. 그러나 연극배우 일로 생계를 꾸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모델 에이전시 회사를 운영했고 19년간 유지했다. 그러다 2008년, 운명처럼 한 사건을 마주했다. 자신이 발탁한 아동 모델이 광고 출연 이후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를 도울 방법을 고심하던 김 대표는 에이전시 직원과 함께 악성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기로 결심했다.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보통의 삶으로 돌아간 아이를 보자 김 대표는 큰 보람을 느꼈다. 이후 사회적으로 ‘잊힐 권리’ 개념이 대두되었고 그는 정보를 삭제하는 일이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2013년에 특허를 출원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장의사 일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약 7년간은 적자였다. 사업 초반엔 의뢰인의 70%가 청소년이었고 10대의 의뢰는 무료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김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김 대표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주변에서도 잘 먹고 살던 일 뿌리치고 왜 이런 걸 하냐며 반대가 심했습니다”라며 “집에 수도와 전기가 끊긴 적도 있었고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을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선한 행동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약 8년간 사업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이들의 상담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흔적들로 고통받던 이들은 김 대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산타처럼 수년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에겐 잊힐 권리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장의사' 김호진 대표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객 비밀유지’위해 사내 단톡방도 없어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지난 2008년부터 잊힐 권리를 위해 온라인 기록 삭제 업무를 진행했다. 이곳엔 현재 열댓 명의 임직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매출은 매년 5억 남짓이다. 개인의 잊힐 권리를 최우선으로 삼지만 삭제가 불가능한 정보도 존재한다. 언론사 기자가 쓴 기사가 그 예다. 김 대표는 “언론사에서 자체적인 판단 하에 삭제를 진행하기도 합니다”라면서도 “법원의 판결을 받아 정보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결이 난 기록은 삭제가 불가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산타크루즈컴퍼니를 통해 삭제되는 기록의 종류는 다양하다. 취업이나 승진을 앞둔 일반인도 의뢰를 요청하지만 대기업을 비롯해 언론사, 정부기관 등에서도 의뢰를 한다. 대기업은 주로 기업에 관한 루머나 악의성 정보를 퍼뜨리는 블랙컨슈머에 대응하는 의뢰를 요청한다. 정부기관은 주로 불필요한 정보를 없애고 필요한 정보를 노출시키기 위해 이 서비를 이용한다. 디지털 정보를 관리하기 위한 셈이다. 언론사도 기자 개인에 대한 보복과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 종종 의뢰한다. 산타크루즈 컴퍼니의 분위기는 보통의 회사와는 다르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회사다 보니 ‘비밀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단체 회식이나 메신저방이 없다.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해 동료와도 의뢰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다. 만약 몇 개월이 지나 또다른 의뢰를 위해 재방문한다 해도 의뢰인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의뢰가 마무리되면 의뢰인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삭제해 버리기 때문이다.

◆공감능력·문해력 있는 사람에 적합

김 대표는 향후 디지털 장의사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온라인 생활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디지털 쓰레기도 늘어난다”며 “개인이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가가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하고 중요한 정보를 노출시키는 작업은 미래에도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 디지털 장의사는 어떤 사람에게 어울릴까? 김 대표는 "책을 많이 읽어서 공감 능력이 좋고, 이해력이 빠른 사람이라면 디지털 장의사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전했다.또한 여러 기관의 정보 삭제와 관련된 일이기에 문해력이 요구된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은 힘들 수도 있다”며 “가만히 앉아 일에 몰입하고, 차분하게 분석을 진행할 줄 아는 사람들이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경잡아라 김가은·박재현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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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 대표가 말하는 ‘디지털 삭제 프로세스’

1. 의뢰인과의 상담
디지털 기록 삭제를 요청한 의뢰인과 상담 후 데이터 수집을 위한 키워드를 정립한다.

2. 데이터 수집
사내 자체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의뢰인의 데이터를 수집한 후 긍정/부정 게시물을 분류한다.

3. 부정적 게시물 분류 및 허위사실 파악
1차적으로 빅데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부정 게시물을 파악했다면, 이후 담당자가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긍정/부정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 우리말 표현의 특성상 사람이 직접 확인해야 알 수 있는 부정 게시물이 있기 때문이다. 최종 분류가 끝나면 허위사실 여부를 파악한다. 4. 각 사이트 게시판 관리자에게 삭제 요청
담당자가 각 게시판에 게시글 중단을 요청한다. 이때 개인정보취급방침, 아동청소년보호정책 등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요청문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5. 게시판 관리 사이트와 조정
김호진 대표의 말에 따르면, 게시판 담당자가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담당자에 따라 이전에는 가능했던 삭제요청이 받아드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들, 세부적인 뉘앙스 차이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