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빨치산·장례식 얘기 읽힐 줄은…20대 독자 편견없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10만부 판매…'문학주간' 개막 토크 참석
개막식서 이태원 참사 애도…"문학이 우리사회 회복 디딤돌 되길"
"빨치산 이야기에, 시골·뒷방 노인네 이야기에, 장례식 이야기인데 그런 삶이 우리에게 주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 통쾌하긴 했어요. "
정지아(57) 작가는 7일 서울 대학로 파랑새극장에서 열린 '문학주간 2022-둘, 사이' 개막 토크에서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주류에서 빗겨 난 인물과 서사를 지녔는데도 뜨거운 반응을 얻은 데 대해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지난 9월 창비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이야기의 힘뿐 아니라 유시민 작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10만 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올해 제39회 요산김정한문학상도 받았다. 이 소설은 딸이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란 점에서 이념 갈등이 희미해진 시대에 닿기 어려운 서사처럼 느껴질 법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딸이 아버지의 생전 관계와 삶을 이해하는 과정 안에 이념 갈등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 특유의 유머, 시골 사람들의 정겨운 에피소드를 더해 사람과 관계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정 작가는 '문학주간' 주제인 '둘, 사이'와의 연결지점으로도 "인간이란 글자 자체가 사이, 관계를 얘기하고 있고 관계없이 나란 존재가 정립될 수 없다"며 "모든 문학은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제겐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40~50대 남성 독자의 호응을 크게 얻었으며, 비율은 낮지만 20대 여성 독자들에게도 읽혔다.

그는 "독자 리뷰를 보니 20대 독자는 오히려 이데올로기에 편견이 없었다"며 "빨치산을 어휘로 받아들이지, 비극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우리보다 진보된 사회에서 자란 20대의 경쾌함, 발랄함이 이 책(의 반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자 리뷰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깨달음도 얻는다"며 "읽는 분들이 더 깊이 있게 읽어주셔서 소 뒷걸음질 친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정 작가는 이날 사회를 맡은 오은 시인이 "왜 아버지 이야기였느냐"고 묻자 2008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던 부모님 삶이 제 삶을 짓누른 부분도 있었지만, 소설 속 화자와 달리 저는 아버지를 매우 좋아했다"며 "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몰랐던 관계를 봤다.

장례식장에 몇 번씩 찾아오는 분 중 빨치산 동료, 우파인 아버지 초등학교 동창, '빨갱이 죽었는데 웬 화환이냐'고 하시는 상이용사 등을 보며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 같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아버지를 이해했다기보다 구례에 내려가 살면서 부모님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으며 살고 있다"며 "구례에 가서 품도 넓어지고 인간도 이해하고, 서울에서 맺는 냉정하고 산뜻한 관계가 아니라 촌구석에서 갱엿 같은 끈적한 관계를 맺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는 옛날에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란 말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소설에서처럼)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라고 하셨다.

지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향해 가고 있는 정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어리석은 딸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헌사이자, 조금 부드러워진 제가 담긴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린 문학주간 행사는 정 작가의 개막 토크를 시작으로 11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일대와 공공그라운드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낭독회와 대담, 전시 등 48개 프로그램이 마련되며, 130여 명의 문학인과 예술인이 참여한다.

박종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개막 선언에서 "애도 분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문학주간을 시작하게 됐다"며 "예술이 혹은 문학이 사람을 크게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시백 문화예술위원회 위원도 인삿말에서 "아프고 슬픈 가을"이라며 "문학이 지닌 공감과 소통의 힘이 10·29 참사에 슬퍼하는 우리 사회의 간극과 갈등을 회복하는 디딤돌이 되길 희망한다"고 애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