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창업 대학 서울대, 글로벌에선 겨우 82위? [긱스]

한국 스타트업 업계는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다양한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창업 규모, 투자 규모,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수 등 다양하죠. 다만 정량 평가인 각종 숫자와 순위 집계 방식이 해당 생태계를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간혹 이런 숫자들이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죠. 하지만 관련 수치들이 한국 스타트업 업계를 이해할 수 있는 보조 지표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올해 다양한 곳에서 나온 분석 자료를 모아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펴봤습니다.


한국에선 서울대만 겨우 100위권?

서울대 82위와 74위.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피치북이 지난달 내놓은 ‘스타트업 창업자를 배출한 세계 대학 100대 순위’ 중 국대 대학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서울대의 성적이다. 지난 2012년 1월 1일부터 올해 10월 21일까지 시리즈A(사업화 단계 투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한 글로벌 스타트업의 창업자 14만 4000명을 분석한 결과다. 서울대는 학부생 기준으로 182명으로 82위를 기록했다. 금융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 애드테크(광고기술) 업체 몰로코의 안익진 대표, 애그테크(농업기술) 스타트업 그린랩스의 공동창업자인 신상훈 대표 등이 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는 대학원생 기준으로는 176명의 창업자를 배출해 74위였다. 다만 이번 조사가 한국 스타트업 업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스타트업 창업자 100대 대학 순위. 피치 제공
상위권은 미국 대학이 모두 차지했다. 1위는 스탠퍼드대학이었다. 학부생 기준 1427명의 창업자를 배출했다. 대학원생 기준으로는 3710명을 기록해 역시 1위를 차지했다. 학부생 기준으로는 UC버클리대(1406명), 하버드대(1184명), 매사추세츠공대(MIT·1065명), 펜실베이니아대(1038명) 등도 피치북 조사 기준으로 1000명 이상의 창업자가 나왔다. 대학원 기준으로는 상위권 순위가 조금 바뀐다. 스탠퍼드대 다음으로 하버드대(3222명), MIT(2459명), 콜롬비아대(1586명), UC버클리대(1459명), 펜실베이니아대(1456명) 등의 순이었다.

국가 크기와 대학 규모를 감안하면 이스라엘의 대학교들의 선전이 눈에 띈다. 학부생 기준으로 텔아비브대(814명)가 7위에 올랐다. 상위 10위 대학 중 유일하게 미국 대학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테크니온이스라엘공대(15위·576명), 히브리대(31위·412명), 라이히만대(38위·350명), 벤구리온대(45위·292명), 바일란대(71위·203명) 등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 대학(서울대) 순위는 낮았다. 중국의 칭화대(36위·384명)와 베이징대(62위· 246명), 인도의 델리대(68위· 217명)와 뭄바이대(71위·203명), 싱가포르대(73위·201명) 등 모두 서울대보다 높은 순위였다.


늘어나는 유니콘

한국 10위. 상반기 기준 국내 유니콘 기업 수의 세계 순위다. CB인사이트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 유니콘기업은 15개로 미국(628개) 중국(174개) 인도(68개) 등에 이어 세계 10위다. 정부 기준 유니콘 기업 수는 다르다. 올 상반기 기준 23개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7월 올 상반기에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 게임사 시프트업, 클라우드업체 메가존클라우드, 신선식품 판매업체 오아시스, 온라인 숙박업소 예약 중개 서비스업체 여기어때컴퍼니 등 다섯 곳이 유니콘기업 목록에 추가됐다고 밝혔다.
이영 중기부 장관(사진 왼쪽 둘째)이 지난 7월 유니콘기업 아이지에이웍스를 방문해 마국성 아이지에이웍스 대표에게 기념현판을 전달했다. 중기부 제공
중기부는 미국 기업분석 서비스 CB인사이트가 집계한 유니콘기업 명단과 투자 유치 현황,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해 국내 유니콘기업을 파악하고 있다. 중기부의 유니콘 집계 속도가 CB인사이트보다 빨라 두 곳의 유니콘 집계 규모가 다르다. 다만 그동안 유니콘기업으로 알려진 일부 기업은 정부의 명단에는 없다. 기업용 채팅 서비스 제공업체 센드버드와 광고 플랫폼 기업 몰로코는 지난해 유니콘기업이 됐다. 하지만 국내에 설립한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중기부의 유니콘기업 명단에서 빠졌다.

모바일 게임사 해긴, 메타버스 플랫폼업체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유아 콘텐츠업체 더핑크퐁컴퍼니 등은 업계에서 유니콘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기부 명단에 역시 없다. 해긴과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올해 투자 유치 소식을 알리며 유니콘기업이 됐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투자계약서 확인 등 중기부의 추가 검증을 통해 확인된 업체만 유니콘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콘기업 명단에서 옐로모바일은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옐로모바일은 현재 사실상 폐업 상태다. 하지만 중기부가 참고하는 미국 기업분석 서비스 CB인사이트의 유니콘기업 목록에서 옐로모바일이 빠지지 않아 정부 명단에도 그대로 있다.


서울의 창업 생태계 순위는?

서울 10위. 글로벌 창업생태계 평가기관 지놈이 지난 6월에 발표한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에서 ‘창업하기 좋은 도시’에서 순위다. 지놈은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로 2012년부터 매년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서울이 올해 전 세계에서 '창업하기 좋은 도시' 10위로 평가받아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2019년엔 30위권 밖이었다가 2020년 20위, 2021년에는 16위로 상승세를 보여왔다. 서울 창업생태계 가치 평가액은 2020년 47조원, 2021년 54조원에서 올해 223조원으로 급증했다. 1위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차지했다.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이 공동 2위였다. 미국 보스턴(4위), 중국 베이징(5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3위는 지난해와 같았다. 베이징과 보스턴만 자리를 맞바꿨다. 글로벌 상위20위 안에 아시아 도시는 서울·베이징을 포함해 5개였다. 중국 상하이(8위), 일본 도쿄(12위), 싱가포르(18위) 등이다.
지놈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 2022의 상위 20위 도시. 지놈 제공
지놈은 6개 항목에 대해 평가했다. 서울의 부문별 점수(10점 만점)로 △자금조달 9점 △지식축적 8점 △생태계활동성 7점 △네트워킹 7점 △인재양성 7점 △시장진출 가능성 5점 등이었다. 이번 평가에서 지놈은 쿠팡 등 5건의 대규모 자금회수가 서울의 창업생태계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 최근 투자가 급증하면서 베이징·도쿄를 제치고 서울은 아시아 도시 중 자금조달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지놈은 서울이 강세를 보이는 산업 분야로 △인공지능(AI)·빅데이터·애널리틱스 △생명과학 △첨단 제조업·로봇산업 등을 꼽았다.

한국은 아직 스타트업 규제 공화국?

유니콘 55개.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하지 못할 기업 수다.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5개 기관과 업체는 올 9월 이런 내용의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다양한 규제 때문에 100대 유니콘 중 55개 업체는 여전히 국내서 온전한 사업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관련 보고서는 지난 2017년에도 글로벌 유니콘 100개 중 56개 업체가 국내서 규제에 저촉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지난 5년간 규제 혁신을 외쳤지만 산업 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2017년에 불가능했던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은 국내에서 여전히 각종 규제에 막혔다.

2017년에 국내에서 온전히 사업을 할 수 없었던 56개 해외 유니콘 기업 중 23개 업체는 상장사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업으로 해외에서는 더 컸다는 뜻이다. 우버,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니오, 스퀘어 등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이름을 올렸다. 에어비앤비를 포함한 12개 기업은 나스닥시장에 상장됐다.

2017년 기준 누적 투자액 60조원이었던 이들 업체의 8월 기준 시가총액의 총합은 497조2000억원에 달했다. 상반기 기준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보고서는 “이제는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 국내 기업들이 향후 규제가 해소된 후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