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얼마나 난해하길래 관객이 뛰쳐나갔을까

홀로 시베리아 향해 걷는 '그'
작품 끝날때까지 등장안해
'고도를 기다리며' 오마주
어렵지만 생각할거리 안겨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3년.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는 언제 올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1952)는 ‘고도’라는 실체가 없는 인물을 두 사람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의 부조리극(인간과 삶의 부조리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와 평화를 찾는 인간 존재의 막막함과 황망함을 그렸다.

연극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사진)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라져버린 ‘고도’를 찾는 내용이다.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공동 제작한 이 연극은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한 정진새 작가 겸 연출가의 신작이다. 지난달 20~23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뒤 지난 2일 서울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작품은 미래에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그’와 이를 지켜보는 기후연구원 ‘AA’와 ‘BB’의 이야기다. 두 연구원은 기후탐사선에서 위성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과 반대 방향인 극동 시베리아 방향으로 걷는 ‘그’를 관찰한다. 사람들이 걷는 길보다 힘들고 추운 길을 자진해서 걷는 ‘그’는 곧 글로벌 스타가 된다. ‘그’가 가는 코스를 구현한 시베리아 순례길이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질 정도다. 하지만 ‘그’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형체만 보일 뿐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대사도 없다.

어렵고 불친절한 연극이다. 도대체 ‘그’가 왜 반대 방향으로 걷는지, 친절하게 이해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50번 넘게 반복되는 암전은 이야기의 흐름을 뚝뚝 끊는다. 작품과 무대의 빈 공간을 관객이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공연이다. 10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이런 실험극에 익숙하지 않다면 십중팔구 엉덩이를 들썩이게 된다. 정진새 연출가는 “광주 첫 공연 때는 중간에 나간 관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객을 고민하게 만드는 게 이 연극의 의도다. 코로나19란 재앙이 전 지구를 휩쓸고 간 이 시대에 인간이 그간 쌓아온 믿음이나 운명이 유효한지, 현실세계의 기반이 무너진 온라인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의 질문을 관객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이 연극이 오마주한 ‘고도를 기다리며’도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됐을 땐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혹평에 시달렸다고 한다. 공연은 오는 27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