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70% 의사정원 못 채워…국립춘천병원 사실상 운영중단

줄어드는 인구, 소멸하는 한국
벼랑 끝에 선 지방 의료

결원율 4년 만에 2배가량 뛰어
포항의료원 응급학과 의사 없고
전북 5곳은 '대리 의료시술'까지

지방 환자, 치료 못 받아 서울로
원정 진료비 年 19조8000억원
"의사 수 늘리고 공공의료 확충을"
강원도 내 유일한 공립 정신과 병원인 국립춘천병원(사진)은 이달 들어 사실상 운영 중단에 들어갔다. 입원 환자 30여 명을 모두 퇴원 조치했고, 신규 입원 환자도 받지 않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원 7명 중 6명이 결원이기 때문이다. 남은 의사가 한 명밖에 없어 외래 진료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병원은 지난 6월부터 채용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 인력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의료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의사들의 수도권 병원 선호에 따라 인력 부족 문제가 커지면서 주요 지방 병원은 필수의료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환자들은 다른 지역 병원으로 내몰리거나 수도권 원정 진료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방의료원 70% 이상 의사정원 미달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 35곳 중 26곳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올해 정원 1266명에서 184명의 결원이 생기면서 2018년 7.6%였던 결원율은 두 배 수준인 14.5%로 뛰었다.
6개 필수진료과(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비뇨기과) 의사가 있는 곳은 8곳(22.9%)에 불과했다. 대구의료원은 산부인과·재활의학과, 순천의료원은 외과·신경외과·비뇨기과, 경북 포항의료원은 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 국립대병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의사의 1년 이내 퇴사 비율은 올해 9월 기준 33.3%였다. 특히 전남대병원(63.6%), 세종충남대병원(41.7%), 강원대병원(41.7%) 등 지방 국립대병원 의사들의 퇴사가 두드러졌다.

◆수도권까지 ‘원정’ 가는 지방 환자들

지방 환자들은 지역 병원의 의사 수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다른 지역 병원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전남 강진 주민들은 강진의료원에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인근 장흥 등 종합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거주지 외 다른 지역으로 진료를 받으러 간 환자들이 쓴 ‘원정 진료비’는 19조7965억원에 달했다. 이 중 수도권으로 유입된 환자들의 진료비는 62.9%인 12조4539억원이었다.

지방에서는 의사 부족으로 의료법상 불법인 대리 의료시술도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북지역본부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 지역의 6개 병원 중 5곳에서 간호사 등 진료 보조인력이 대리 의료시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산부인과 부족은 저출산의 한 요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지역에 따른 산부인과 부재 등으로 임산부의 건강한 임신 유지와 출산의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며 ‘임신 및 출산 관련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복지부 등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전국 산부인과는 2011년 777개에서 지난해 481개로 10년 사이 38.1% 줄었다.

◆“의사 수 확대해야”

의료계는 지방 의사 수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의료수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 지방 종합병원 관계자는 “지방에 의사들을 유치하려면 결국 급여를 대폭 올려줘야 하는데 지방 병원들의 경영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7명을 밑돌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의사 수 증원이 (지역불균형 해소에)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조건 중 하나”라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의사 수 확대에 부정적이다.

임도원/이지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