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픔을 돈으로 셀 수 있나

하수정 유통산업부 차장
2019년 열두 살 이기백 군은 부산 해운대 호텔 수영장에서 팔이 끼는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또래 세 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경찰은 호텔 측이 안전요원 배치 기준을 위반한 것을 확인했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수영강사와 안전요원을 겸임시켰던 것이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4성급 호텔 수영장에선 30대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18분가량 물속에 방치돼 익사했다. 두 명의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할 호텔은 요원 한 명만 배치했고, 그마저 식사하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안전 무시가 불러올 손실

수영장 익사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수상 안전요원 배치 기준을 완화했다. 자유 수영 없이 강습만 있을 경우 안전요원 자격을 갖춘 강사가 있다면 안전요원을 두 명이 아니라 한 명만 배치할 수 있게 조정했다. 문체부는 기준 완화 이유와 관련, “수영장 업계의 영업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렇게 안전은 우리 사회에서 부담이자 비용으로 취급된다. 근로자 사망사고가 났던 SPC그룹 계열 빵 공장도, 끼임 사고가 났던 농심 라면 공장도 그랬다. 사고가 반복됐지만, 그 설비들에는 인터로크(자동방호장치)가 없었다. 신체가 끼면 기기 작동을 멈추게 하는 인터로크는 기껏해야 개당 30만원이다.

경제적 이유로 안전을 무시했다가 더 큰 경제적 희생을 치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2003년 2월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때는 어땠나. 대구 상권은 초토화됐고 그해 1분기 민간 소비는 전기 대비 0.8%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사고의 경제적 손실이 7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304명이 사망한 이후 그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분기 0.9%에서 2분기 0.5%로 주저앉았다. 경제학자들은 세월호 참사 경제 타격이 2조~3조원에 달한다고 봤다.

재난 경제학이 간과한 것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와중에 참사가 벌어지며 그동안 버텨주던 소비가 급랭할 것이란 우려다. 한국은행은 4분기 성장률을 ‘0% 안팎’으로 예측했다. 마이너스로 역성장할 수도 있단 뜻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대형 재난이 경제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케빈 클리슨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가 주장한 ‘재난의 경제학’, 다른 말로 ‘파괴의 경제학’이 그렇다. 재난은 단기적으로 생산성 하락을 초래하지만, 복구 과정에 투입된 자금과 노동으로 결국 드라마틱한 경기 회복을 가져온다는 논리다.하지만 파괴 경제학이 간과한 것이 있다. 아픔의 수치를 산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가 경제는 회복될 수 있어도 사람의 틀어진 서사는 되돌리기 쉽지 않다.

자식 잃은 부모의 사무치는 통곡, 눈앞에서 친구를 잃은 생존자의 몸부림, 이를 바라보는 집단 트라우마의 고통은 수치로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안전은 절감해야 할 비용이 아니다. 돈으로 미리 위험을 막을 수 있다면 돈으로 막는 것이 가장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