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회장 선임 앞두고…이사회 의장들 불러 모은 금감원장

거세지는 '新관치' 논란

금감원장, 신한·우리·농협 등
오너 없는 8개 지주사와 간담회

"CEO 선임 공정하게 이뤄져야"
절차 들어간 금융지주 공개 압박

금융사 인사에 정부 입김 세질듯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소집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은행연합회관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백 농협금융 의장, 노성태 우리금융 의장, 유관우 JB금융 의장, 이윤재 신한금융 의장. 김범준 기자
금융업계에서 ‘신(新)관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말과 내년 초 주요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대거 만료되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금융지주 회장 선임권을 쥔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모으면서다.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금융지주에 대한 금융당국의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7일 중도 사퇴한 데 이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9일 연임이 불가능한 중징계를 받으면서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사회 공개 압박 나선 금감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이 금감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8개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BNK DGB JB)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열었다. 국내 10개 금융지주 중 지배주주가 있는 한국과 메리츠를 뺀 ‘주인 없는’ 8개 금융지주만 콕 집어 부른 것이다. 금융지주는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선발하고 면접 등을 거쳐 회장을 뽑는 구조다. 금감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 활동”이라며 이번 간담회가 금융지주 회장 선임 문제 때문임을 인정했다.

이 금감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합리적인 경영 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간 신한 우리 농협 BNK 등 4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압박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금감원장은 10일에도 손 회장의 중징계 취소 소송 가능성과 관련해 “지금은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시점임을 고려할 때 당사자도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실상 손 회장에게 ‘소송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금융권에선 과거 감독당국이 주로 물밑에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인사에 대한 의중을 전달한 것과 달리 이 원장이 공개적으로 구두 개입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장이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과 언론에 일정을 공개한 간담회를 연 것은 윤석헌 금감원장 시절인 2018년 10월 이후 4년 만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손 회장의 현명한 판단을 언급하면서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손 회장이 연임하면 우리금융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를 던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8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나 “오늘은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금융지주 회장 후보 상당수 ‘뒷배’

이번 간담회의 시점도 논란거리다. 간담회 직후 농협·BNK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가서다. 농협금융은 이날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과 권준학 농협은행장 등의 후임 인선 작업을 시작했다. 농협금융 지분 100%를 보유한 농협중앙회가 관료 출신 인사를 영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김 회장의 사퇴로 회장직이 공석인 BNK금융도 이사회를 열어 정성재 전무를 직무대행(일시 대표이사)으로 선임하고 임원추천위 구성을 기존 사외이사 4명에서 사외이사 6명 전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BNK금융이 규정을 바꿔 퇴임 임원과 외부 인사도 회장에 선임될 수 있도록 하면서 전직 부산·경남은행장을 비롯해 6~7명이 후보로 거론된다. 한 전직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은 “금감원장은 ‘외압이 없다’고 하지만 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꼽히는 인물 대부분이 정부와 정치권을 뒷배로 둔 인사들”이라고 꼬집었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