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SP의 진화…호주, 한국에 "5G 정책경험 공유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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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정부, KDI에 제안서 제출…연내 사업 착수호주 정부가 한국 정부에 차세대 통신망 기술표준 선점 등 디지털·핵심기술 분야 협력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주도로 저개발국에 성장 경험을 공유해주던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을 통해서다.
첨단 기술 분야 양국 우위 탐색해 기술 표준 구축 협력
개도국에 경제성장 노하우 전수하던 KSP
1인당 GDP 韓의 2배-자원 부국 호주로 영역 확장
기술표준이 산업
기술 패권 시대 對中 방어선 구축 의미도
호주는 한국이 자랑하는 정보통신(IT) 기술력과 이를 키워낸 이동통신정책 경험을 공유 받길 원하고 있다. 5G를 넘어 6G까지 디지털 기술패권을 두고 중국 등과 경쟁국인 한국으로선 자원 및 에너지 대국인 호주를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호주와의 ‘정책 동맹’을 향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미국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번 KSP는 이동통신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인정 받은 계기이자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기술표준 등 국제규범을 무기로 한 경제 패권 경쟁의 단면이란 평가도 나온다.
○호주 정부 한국에 공식 제안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호주 정부와 디지털·핵심 기술 국제규정 제정과 표준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골자로 한 KSP를 연내 추진하기로 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 6월 호주국립대학교 기술정책디자인센터를 통해 KDI에 KSP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호주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22년 기준 6만6000달러로 한국(3만3000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정부가 헝가리, 폴란드 등 중진국을 대상으로 KSP를 수행한 적은 있지만, 한국보다 국민 소득이 높은 선진국과 KSP를 함께 하는 것은 2004년 사업 출범 이후 처음이다.우리의 경제 성장 경험과 정책 노하우를 다른 국가와 공유하는 KSP는 한국이 가진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컨텐츠로 꼽힌다. 현지 기초 인프라 사업 대출과 같은 ‘하드파워’가 중심인 일반 공적개발원조(ODA)와는 차별화된 국제 사회 기여 방식이다.
2004년 시작된 KSP를 통해 한국은 지난해까지 17년간 총 90개국에 1400여개 주제에 관한 정책 자문을 수행했다. 사업 초창기엔 산업화 시기 경제개발계획, 도시·농촌 개발 등 경제성장 경험을 전수하는 것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감염병 대응 시스템, 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 재정시스템 디지털화 등으로 사업의 폭이 넓어졌다.
호주와의 KSP는 일방적인 정책 ‘전수’ 중심이었던 기존 사업과 달리 선진국 간의 정책 동맹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기재부 측의 설명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KDI와 호주국립대 연구진은 각국이 어떤 디지털·핵심 기술에서 우위를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5G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표준과 국제규정 제정에 있어서도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기술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에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셈이다. 호주 정부는 KSP를 통해 3G·4G·5G등 이동통신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6G등 차세대 통신 핵심 기술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기술 정보와 정책 경험을 공유 받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니켈·코발트를 비롯해, 액화천연가스(LNG), 철광석, 석탄 등이 풍부한 자원 부국인 호주와의 협력이 첨단 기술 발전을 뒷받침할 공급망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호주 정부와의 KSP가 저개발국 지원 기능을 넘어 선진국 간 지식과 역량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가 간의 정책 협력이 한국의 기업들에게도 시장을 확대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패권 경쟁의 단면”
전문가들은 한국과 호주의 이번 협력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패권 경쟁과 그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이 분리되고 있는 현상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다. 양국은 사업 목적을 ‘한국과 호주의 경제적 번영 및 안보 증진’으로 규정했다. 첨단 IT기술과 관련한 기술표준을 정하는 것은 경제 뿐 아니라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명시한 셈이다.호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안보협의체인 오커스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일본과 정상회담을 통해 기존의 안보 동맹을 경제안보, 사이버 공격 대응 등 새로운 개념을 추가한 신(新)안보동맹으로 격상시키고, 호주가 강점을 지닌 자원·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기재부에 따르면 양국은 KSP의 성과에 따라 협력의 범위를 ASEAN과 미국 등과의 다자 협력으로 확대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술표준과 같은 국제 규정을 하나의 도구로 글로벌 공급망이 분할되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술표준은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으로 의미가 격상됐다”며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