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신뢰는 한결같음에서 싹튼다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구두 닦아 신고 다녀라.” 은행에 입행해 첫 출근 인사드릴 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딱 그 한마디만 하셨다. 모든 게 서툴러 정신없이 지내느라 잊고 있다 며칠 지나 지점 앞 구두 수선집에 구두를 닦아달라 했다. 구두를 이리저리 들춰본 주인이 몇 군데 손봐야 한다고 해 그러라고 했다. 얼굴이 비칠 만큼 반짝이는 구두를 건네받아 신고 몇 걸음 걸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내 구두만 쳐다보는 거 같아 발가락이 옴츠려 들었으나 발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자세가 바로잡아지니 걸음걸이가 달라졌다. 동료들의 광택 나는 구두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퇴근 무렵에는 구두를 빼고 동료들은 모든 게 나와 다른 모습인 걸 알아챘다. 좋아하던 흰색을 버리고 검은색 양말로 바꿔 신으며 거기에 맞춰 양복이며 심지어 말투까지 모두 동료들과 어울리게 바꿨다.

며칠 뒤 출근 인사드릴 때 나를 둘러보던 아버지가 차고 있던 커프스 버튼을 풀어 줬다. 양복 주머니에 꽂은 작은 머리빗도 꺼내주며 하신 말씀이다. “마름(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은 관리인) 일을 해 우리 집을 일으킨 네 고조부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며 네 할아버지가 나를 똑같이 가르쳤다.” 그렇게 시작한 말씀이 그날은 길어 결국 출근이 늦었다. 96세로 장수한 고조부는 82세에 첫 손자를 얻었다. 고조부는 42세에 첫 아이를 얻은 증조부를 제치고 손자인 내 할아버지를 직접 혹독하게 가르쳤다. 남긴 말씀이 ‘용모단정(容貌端正)과 의관정제(衣冠整齊)’다. 그게 상대를 존경하고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라고 고조부는 손자에게 가르쳤다.아버지는 내 고조부의 가르침을 “은행도 마찬가지다”라고 전제하고 은행의 피나는 노력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은행 문 입구에는 반드시 계단이 있다. 내 전 재산인 돈을 보관하는 곳에 들어가니만큼 몸을 가지런히 하라는 뜻이다. 육중한 출입문도 밖에서 당겨 열게 돼 있다. 내 돈이 안전하게 보관됐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다. 비스듬히 보이게 열어둔 금고 두께는 거래하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금고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이 가장 높은 금고지기인 지점장이다. 오랜 세월 은행이 그런 사소한 데 이르기까지 노력해 애써 얻으려 했던 게 믿음이다. 은행업의 본질은 신뢰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예금주 입장에서 보면 은행원에게 돈을 빌려주는 거다. 그러니 은행원의 일거수일투족은 은행의 신뢰를 다지는 수단이다. 은행원들은 마땅히 거기 맞는 문법을 따라야 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인용한 고사성어가 ‘소거무월(小車無軏)’이다. ‘수레를 끄는 소나 말 잔등에 멍에가 없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다. 원문은 이렇다. “신의가 없는 사람은 신의가 옳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가 끄는 큰 수레에 멍에가 없고 사람이 타는 작은 수레에 걸이가 없다면 무엇으로 수레를 끌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䮘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아버지는 신뢰를 마차를 연결하는 멍에로 본 공자의 통찰을 탁월하다고 몇 번 더 말씀하셨다. 무릎 꿇고 앉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내게 아버지는 “착념(着念)해라. 첫인상은 2~3분이면 결정 난다. 겉모습이 중요하다. 넥타이 매는 게 어색해도 두 달 지나면 익숙해진다. 습관은 66일이면 길든다”고 했다.

우리는 몸이 뜨거우면 땀이 나고 추우면 오들오들 떨어 체온을 유지한다. 이렇게 자신을 최적화하는 생명현상이 항상성(恒常性)이다. ‘한결같음’인 항상성에서 믿음이 생긴다. ‘그는 그럴 것이다’라고 한결같음을 기대하는 상대에게 그에 부합하는 언행을 보일 때 신뢰가 싹튼다. 어떤 경우든 한결같은 마음이 항상심(恒常心)이다. 항상심이 항상성을 만든다. 한결같다는 걸 상대에게 알려주는 신호가 외모다. 지금도 중요한 날엔 아버지가 주신 커프스 버튼을 차고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 마음이 푸근해져서다.<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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