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 지갑 닫았는데…은행, 국채 팔고 신용채권 매수

이달들어 공사·회사채 등 7조원 이상 순매수…운용사도 매수세 늘어
보험 등 다른 '큰손'들은 아직…"연초에 정책효과 본격화" 전망도
은행이 최근 국채를 대거 팔고 회사채 등 신용채권에 대한 매수를 늘리면서 수요가 말라붙었던 시장에 온기가 돌지 주목된다. 채권시장의 '큰손' 가운데 현재 자금 여력이 가장 양호한 은행이 매수세를 키우자, 시장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이어 내놓은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보고 유동성 경색 현상이 한고비를 넘었다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17일 금융투자협회와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은행은 이달 들어 전날까지 국채를 약 2조5천100억원 어치 순매도했다.

반면 이 기간 공사채·금융채·회사채 등 신용채권은 7조2천100억원 어치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같은 기간 순매수 규모(4조9천300억원)보다 46%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금융 당국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유예 조치와 예대율 규제 완화 조치로 은행들의 국채 수요가 줄어들고, 대신 우량 공사채·회사채 등 금리가 높은 신용채권 매수에 여력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안전선호·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국고채를 적극 매수했었지만, 최근 채권시장의 위험선호가 어느 정도 살아나면서 신용채권을 매수하기 시작한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자금시장 안정화 정책 효과에 편승해 이 같은 매매 움직임을 보인 것"이라며 "현재 은행들의 매수세는 시장의 유동성 경색 완화로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은행만큼은 아니지만 자산운용사들도 이달 들어 2조7천700억원 규모의 신용채권을 매수했다.

이 역시 지난달 동기(1조6천900억원) 대비 증가한 수준이다. 다만 채권시장의 대표적 큰손인 보험이나 기금은 아직 유의미한 매수 행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시중 자금의 상당수가 유입된 은행권과 달리 보험 등 다른 기관 투자자들은 아직 신용채권을 적극적으로 매수할 만큼의 자금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은 최근 은행의 예·적금 금리 상승으로 저축성 보험 해약이 늘어나면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고, 증권업계 역시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관련 유동성 경색과 실적 부진에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연기금의 경우 분기별 자산 배분과 집행 계획이 정해져 있어 단기적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해 매수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함께 연말에는 기관들의 북 클로징(book closing·회계 연도 장부 결산) 등으로 신용채권 매수가 줄어드는 계절적인 요인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채권 부문 관계자는 "연말에는 원래 기관들이 채권을 잘 안 사는 시기여서 정부와 당국의 정책에도 신용물 거래가 당장 활발해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며 "내년 1∼2월쯤에야 본격적인 정책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일하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