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스프 스치기만 해도 로또"…베일에 가려진 회사 찾았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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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라면 스프에 스치기만 해도 3대가 먹고 산다’. 식품 원물 업계에 회자하는 전설과 같은 얘기다. 1986년에 첫선을 보인 신라면은 최근까지도 매일 300만개, 한 달에 약 9000만개가 팔리는 부동의 라면 1위다. 신라면을 포함해 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44.3%(주요 라면 4개 사 100% 기준, 농심 추정치)에 달한다.
라면 한 봉지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100여 개에 가깝다. 표고버섯, 파, 다시마 등의 각종 건더기와 ‘며느리도 모른다’는 신라면 ‘비법’ 분말스프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 중 어느 하나라도 공급할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은 매년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라면 등 농심 라면류 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스프와 소스의 제조사는 태경농산이다. 농심홀딩스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로 경기도 안성과 대구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133억원, 153억원을 기록했다. 태경농산이 감사보고서에 밝힌 주요 영업 내용은 ‘농·축·수산물 가공 및 스프 제조, 농·축·수산물의 재배 양축 및 양식업’이다.
태경농산의 감사보고서상으론 신라면을 비롯해, 라면 스프와 건더기류를 태경농산이 모두 직접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국내 라면 제조사 관계자는 “태경농산은 각종 원물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지만, 국내외에서 원물을 공급받아 자신만의 비법을 활용해 스프를 배합한다”며 “이 같은 방식은 오뚜기, 팔도 등 다른 라면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감사보고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태경농산에 원물(각종 첨가제 포함)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라면 스프 공급사로 일확천금을 얻은 기업을 정녕 찾을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먹거리에 어떤 재료와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나라’ 사이트를 찾아봤다.
농심의 신라면분말스프를 검색하자 스프에 들어가는 성분과 원료가 나왔다. 정제소금, 백설탕, 조미홍고추분말, 후춧가루 외에 소고기맛베이스M2, 볶음양념분-B, 매콤양념분말SH, 간장양념분말SH, 조미소고기분말SH 등의 복합조미식품이라 불리는 각종 첨가제가 등장했다.소금, 설탕, 고추·후추가루는 국내 대형 제당사에서 공급받거나 수입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 한 개에 들어간 원재료 중 수입산의 비중은 약 30%다. 면을 만드는 밀가루는 국내 제분사로부터 받으니 스프와 건더기의 상당 부분이 수입산이라는 얘기다. 기자가 찾는 베일에 싸인 국내 ‘라면 스프 재벌’은 복합조미식품에 숨겨져 있을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다.
검색을 좀 더 해보자 의외의 제조사가 등장했다. 소고기 맛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첨가제의 제조사는 (주)세우라는 회사다. 세우는 농심과 태경농산 감사보고서상 어떤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 기업이다. 작년 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세우는 지난해 매출 1028억원, 영업이익 54억원을 거뒀다. 2020년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70억원, 94억원에 달했다. 기자가 찾던 ‘스프 재벌’의 첫 번째 사례다. 세우는 신라면 스프에 들어가는 간장양념분말SH의 공급사이기도 하다.
이번엔 매콤양념분말 차례. 검색을 세분화하자 나원, 우일수산, 선제, 디딤, 동방푸드마스타, 송림에프에스, 태경농산 등 7개 기업이 결과값으로 나왔다. 농심의 스프 제조사인 태경농산이 매콤양념분말SH를 공급하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다만, 우일수산이라는 기업이 눈에 띄었다. 태경농산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우일수산은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내역’에 등장한다. 지난해 태경농산은 우일수산으로부터 148억원 규모의 물품을 매입했다. 감사보고서에 나와 있는 우일수산의 주요 사업은 조미식품ㆍ어육제품 및 식육제품 제조업 등이다. 본점 및 공장은 충남 서천군 장항공단에 있다.농심에 문의한 결과 “우일수산과 세우 모두 농심과 거래 관계가 있다”며 “각 사와의 연간 거래 금액은 작년을 기준으로 300억~70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수산업계 관계자는 “우일수산은 농심 라면 건더기에 들어가는 동결건조 기술을 보유한 핵심 관계사”라며 “햄버거에 들어가는 새우 패티와 각종 건새우 등 건조식품 제조에서도 업계 수위권의 회사”라고 설명했다. 우일수산은 라면에 들어가는 ‘건더기 재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라면 한 봉지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100여 개에 가깝다. 표고버섯, 파, 다시마 등의 각종 건더기와 ‘며느리도 모른다’는 신라면 ‘비법’ 분말스프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 중 어느 하나라도 공급할 수 있다면 그 주인공은 매년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농심 라면 스프는 태경농산이 만든다?
기자는 이 얘기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농심 신라면의 구성 재료를 누가 공급하는지부터 확인했다. 농심의 올 3분기 감사보고서는 라면과 스낵 제조용 주요 원재료를 공개하고 있다. 다만, 공개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소맥분, 팜유, 포장재 등 원재료에 관해선 딱 3개만 보고서에 나와 있다. 소맥분은 면류 등에 쓰이는 핵심 원료로, 농심은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 9개 국내 제분사 중 6개 사로부터 공급받고 있다.신라면 등 농심 라면류 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스프와 소스의 제조사는 태경농산이다. 농심홀딩스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로 경기도 안성과 대구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133억원, 153억원을 기록했다. 태경농산이 감사보고서에 밝힌 주요 영업 내용은 ‘농·축·수산물 가공 및 스프 제조, 농·축·수산물의 재배 양축 및 양식업’이다.
태경농산의 감사보고서상으론 신라면을 비롯해, 라면 스프와 건더기류를 태경농산이 모두 직접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국내 라면 제조사 관계자는 “태경농산은 각종 원물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지만, 국내외에서 원물을 공급받아 자신만의 비법을 활용해 스프를 배합한다”며 “이 같은 방식은 오뚜기, 팔도 등 다른 라면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감사보고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태경농산에 원물(각종 첨가제 포함)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베일에 싸여 있는 스프, 건더기 원물 공급사들
문제는 이들 원물 공급사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업체들조차 ‘스프는 태경농산이 만든다’ 정도의 정보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한 대형 라면 제조사 관계자는 “원재료를 납품하는 회사는 정보 보안 차원에서 각사가 비밀로 유지하고 있다”며 “해당 정보가 오픈되면 경쟁사에서 방해 공작을 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라면 시장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 보니 편법이 기승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경쟁사에 원물을 공급하는 업체를 상대로 ‘더 높은 단가를 줄 테니 기존 공급사와는 거래를 끊어라’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면 제조사로선 갑자기 기존 거래선이 끊기면 새로운 업체를 찾는 데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농심 역시 같은 이유로 “원물 공급업체와 거래액을 모두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라면 스프 공급사로 일확천금을 얻은 기업을 정녕 찾을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먹거리에 어떤 재료와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려주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나라’ 사이트를 찾아봤다.
농심의 신라면분말스프를 검색하자 스프에 들어가는 성분과 원료가 나왔다. 정제소금, 백설탕, 조미홍고추분말, 후춧가루 외에 소고기맛베이스M2, 볶음양념분-B, 매콤양념분말SH, 간장양념분말SH, 조미소고기분말SH 등의 복합조미식품이라 불리는 각종 첨가제가 등장했다.소금, 설탕, 고추·후추가루는 국내 대형 제당사에서 공급받거나 수입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 한 개에 들어간 원재료 중 수입산의 비중은 약 30%다. 면을 만드는 밀가루는 국내 제분사로부터 받으니 스프와 건더기의 상당 부분이 수입산이라는 얘기다. 기자가 찾는 베일에 싸인 국내 ‘라면 스프 재벌’은 복합조미식품에 숨겨져 있을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다.
세우, 우일수산…농심 라면의 핵심 비법 만드는 회사는 따로 있다
우선 소고기맛베이스M2와 매콤양념분말SH라는 성분의 복합조미식품을 좀 더 찾아봤다. 신라면은 첫 등장 때부터 매콤한 소고기 국물의 라면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다시 말해 신라면 스프의 ‘앙꼬’다.검색을 좀 더 해보자 의외의 제조사가 등장했다. 소고기 맛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첨가제의 제조사는 (주)세우라는 회사다. 세우는 농심과 태경농산 감사보고서상 어떤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 기업이다. 작년 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세우는 지난해 매출 1028억원, 영업이익 54억원을 거뒀다. 2020년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70억원, 94억원에 달했다. 기자가 찾던 ‘스프 재벌’의 첫 번째 사례다. 세우는 신라면 스프에 들어가는 간장양념분말SH의 공급사이기도 하다.
이번엔 매콤양념분말 차례. 검색을 세분화하자 나원, 우일수산, 선제, 디딤, 동방푸드마스타, 송림에프에스, 태경농산 등 7개 기업이 결과값으로 나왔다. 농심의 스프 제조사인 태경농산이 매콤양념분말SH를 공급하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다만, 우일수산이라는 기업이 눈에 띄었다. 태경농산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우일수산은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내역’에 등장한다. 지난해 태경농산은 우일수산으로부터 148억원 규모의 물품을 매입했다. 감사보고서에 나와 있는 우일수산의 주요 사업은 조미식품ㆍ어육제품 및 식육제품 제조업 등이다. 본점 및 공장은 충남 서천군 장항공단에 있다.농심에 문의한 결과 “우일수산과 세우 모두 농심과 거래 관계가 있다”며 “각 사와의 연간 거래 금액은 작년을 기준으로 300억~700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수산업계 관계자는 “우일수산은 농심 라면 건더기에 들어가는 동결건조 기술을 보유한 핵심 관계사”라며 “햄버거에 들어가는 새우 패티와 각종 건새우 등 건조식품 제조에서도 업계 수위권의 회사”라고 설명했다. 우일수산은 라면에 들어가는 ‘건더기 재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