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류 최고의 발명품' 도시는 팬데믹 이후에도 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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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생존인간은 오래도록 도시의 집적효과를 믿어왔다. 오죽하면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을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도시는 상업과 지식의 중심 공간이다. 세계 인구의 76%, 국내 인구의 91%가 도시에 산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시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갔다. 도시를 향하는 세계 무역과 여행은 병원균 확산 경로가 됐다. 각국 정부는 도시를 봉쇄했다.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재택근무에 들어갔고, 도시 중심가의 사무실은 텅 비었다. 빌딩 숲 근처 상점들에는 ‘임대 문의’ 종이가 나붙었다. 도시는 인류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식·상업·행정 중심지일까.
에드워드 글레이저
데이비드 커틀러 지음
이경식 옮김 / 한국경제신문
632쪽│2만8000원
베스트셀러 11년 만에 후속
도시는 교류 촉진하는 인류 번영의 기반
집적효과 누리려 세계 인구 76% 도시 거주
전염병 터지며 취약점 노출했지만
도시의 장점이 압도적으로 많아
앞으로도 '도시의 파워'는 유효할 것
<도시의 생존>은 두 명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역할을 되짚기 위해 쓴 책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전작 <도시의 승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주장한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보건경제학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커틀러가 함께 집필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5월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 “팬데믹 기간에 도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격렬한 논쟁에 경제학이라는 도구를 동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긴급히 들었기 때문이다.
책은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망라한다. 서론을 담은 1장 이후 전반부는 도시와 전염병의 관계를 고찰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비롯해 인류 역사상 반복돼온 대도시 간 전염병 확산과 도시 내 질병 확산을 다뤘다. 후반부는 교육, 범죄, 주거 문제, 재택근무 등 보다 현실에 밀접한 도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들은 도시의 미래를 낙관한다. “도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테네 거리에서 논쟁을 벌인 뒤 공동 창조의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왔다”며 “도시의 기적이 끝나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코로나19 이후에도 대면 근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사무실을 주축으로 한 산업활동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직원들은 동료와 함께하는 점심 식사 자리나 휴게실에서 우연히 이뤄지는 소통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사무 공간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회사에서 가정으로 떠넘긴다는 측면도 있다.그렇다고 인류가 가만히 손 놓고 있어도 도시가 잘 돌아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책은 도시에 산재한 문제를 조목조목 짚는다.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저소득층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문제, 빈부격차, 보건의료체계 등을 분석한다. 대안은 도시 바깥까지 뻗어나간다. 가령 세계보건기구(WTO)의 변화를 촉구한다. 혹시나 있을 다음 팬데믹 상황에는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소수 회원국 중심으로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위험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펼친다.한국 독자들이 새겨들을 만한 묵직한 메시지가 적지 않다.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질병에 가장 취약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주택 공급이 제한되면 가격 폭등이 더욱 심해진다” 등은 국적을 떠나 밑줄을 치게 되는 문장들이다.
다만 도시라는 단어로 묶기에는 각국과 도시마다 사정이 다르다. 이 책의 태생적 한계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도시를 바라보면서 썼다는 점이다. 책은 서구의 역사와 현재를 중심으로 서술됐다. 5장에서 집중 조명하는 ‘의료제도’ 앞에는 ‘미국의’가 생략돼 있다. 저자들이 궁금해하는 건 결국 ‘미국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의료 분야에 쓰면서도 전염병을 억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까’라는 것이다. 이들은 주된 원인을 미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민간 의료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에서 찾는데,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경찰 개혁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2020년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과잉 진압해 질식사에 이르게 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라는 미국적 맥락과 함께 살펴야 한다.매 순간 변화하는 도시를 연구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저자들은 이 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원하게 인정한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대비해야 한다는 책의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이 책에서 우리가 내놓은 주장을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겠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을지 모르는 오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고, 안타깝게도 우리도 그렇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