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 가뭄 반세기 내 최악…극단적 기후현상 짙어진다

연강수량 1천350㎜ 넘는 전남에 이제까지 800㎜ 내려
강수량 '양극화'…서울·경기는 올해 강수량 역대 4위
유럽도 올여름 500년만의 가뭄…세계 곳곳서 '물난리'
강수량 통계로도 반세기 내 최악의 가뭄이다. 전남을 중심으로 남부지방에서 늦봄 시작한 가뭄이 극심해지고 있다.

남부지방 가뭄에도 기후변화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 교과서에도 실린 '다우지'인데…올해 전남 강수량 50년 내 최저
19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7일까지 전남에 내린 비는 805.1㎜로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돼 각종 기상기록 기준으로 삼는 1973년 이후 50년 사이 같은 기간 강수량으로는 가장 적었다. 805.1㎜는 평년(1991~2020년) 동기 강수량의 60%에 그친다.

호남 대표도시인 광주의 평년 11월과 12월 강수량은 각각 50.2㎜와 37.1㎜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평년만큼만 비가 내린다고 해도 전남은 올해 매우 이례적으로 연 강수량이 900㎜에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전남은 연평균 강수량이 1천350㎜ 정도다.

특히 남해안과 지리산 일대는 여름 남서계절풍이 불 때나 태풍이 지나갈 때 비가 쏟아지는 다우지(多雨地)다.

한국지리 교과서에도 남해안과 지리산 일대가 대표적인 다우지로 명시돼있는데 올해만 보면 교과서가 틀렸다. 전남 말고 남부지방 다른 지역도 올해 비가 매우 적게 내렸다.

전북은 올해 17일까지 누적 강수량이 평년 치의 71% 수준인 894.6㎜이며 이는 같은 기간 강수량으로는 1973년 이후 8번째로 적다.

경북과 경남 누적 강수량은 각각 786.7㎜와 936.0㎜인데 이는 평년 치의 70%와 64%이고 역대 순위로는 하위 4위에 해당한다.

남쪽의 다른 대표적 다우지인 제주는 올해 비가 1천238.9㎜ 내렸다.

남부지방보다 상황이 나아 보일 수 있지만 제주 누적 강수량도 평년 때의 80%에 그치며 순위를 따져봐도 적은 순으로 9위다.

◇ 중부는 평년강수량 초과, 남부는 가뭄…기후변화 그림자
남부지방에 이토록 비가 안 온 원인은 우리나라 남쪽에 고기압이 자리를 잡고 영향을 준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재 가능한 기상학적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연 강수량 3분의 2가 내리는 장마 때 이런 모습이 나타났다.

올해 장마 때를 돌아보면 중부지방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부지방에는 폭염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장마전선 위치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북태평양고기압 중심에 소용돌이가 발생하면서 그 가장자리가 장마가 시작할 때부터 한반도 쪽으로 뻗어 나왔고 이에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만 걸치는 경우가 발생했다.

6~8월 강수량을 보면 중부지방은 941.3㎜로 평년(759.6㎜)보다 많았지만, 남부지방은 483.3㎜로 평년 치(704.0㎜)를 크게 밑돌았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 여름철 강수량 차가 458.0㎜에 달했는데 이는 1995년(536.4㎜) 이후 가장 큰 폭이다.

경남 등 영남은 가을 들어서 제11호 태풍 힌남노 등으로 피해도 봤지만 강수로 물도 일부 확보했다.

그러나 전남 등 호남은 태풍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아 웬만한 비로는 해갈이 요원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중부지방은 17일까지 누적 강수량이 1천409.3㎜로 평년 치보다 11%나 많다.

특히 서울과 경기만 따지면 누적 강수량이 평년보다 34% 많은 1천708.5㎜로 1973년 이후 역대 4번째로 많다.

올해 남부지방 가뭄이 어쩌다 나타난 기상이변인지 아니면 기후변화 한 갈래로 나타난 현상인지 확정적으로 말하긴 아직 섣부르다.

다만 기후변화 그림자가 남부지방 가뭄에도 어른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은 '가설' 수준이지만 이번 세기 처음으로 '라니냐'가 3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점이 남부지방 가뭄에 근본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라니냐는 적도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현상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지금 라니냐는 2020년 8월 시작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세계기상기구(WMO) 등은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강해져 동태평양 따뜻한 물이 남중국해 등 서태평양으로 옮겨가 서태평양 수온이 높아진다.

수온이 높아지면 바다에서 대기로 열이 많이 공급되고 이에 공기층이 두꺼워지면서 고기압이 발달할 가능성도 커진다.
◇ 세계 곳곳 '물 재난'…앞으로 더 빈번·심화
올해 인류는 수많은 기후변화 현상을 목격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가뭄과 홍수 등 물과 관련한 재난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올여름 500년만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다.

북반구에서 대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막히는 '블로킹' 현상이 발생하면서 유럽이 고기압에 갇혀 맑고 더운 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파키스탄에서는 국토 3분 1이 잠기고 사망자가 1천700명을 넘어선 대홍수가 올여름 발생했다.

피해액은 400억달러(약 53조6천억원)로 추산된다.

파키스탄에서 지난 4~5월 기온이 40도가 넘는 날이 빈번하고 일부 지역은 50도가 넘는 날도 있었던 기록적인 더위가 나타났던 것이 대홍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기온이 높아지면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다.

지구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남아시아 우기 강수량이 5%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도 8월 초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봤다.

서울 동작구엔 1시간에 141㎜ 비가 쏟아지기도 했는데 '기후변화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기상청장 입에서 나왔다.

2020년 유엔 물개발보고서(WWDR)에 따르면 2001년과 2018년 사이 발생한 자연재난 74%가 물과 관련됐다.

물 관련 재난 중 가뭄과 홍수에 의해서만 숨진 사람은 20년 사이 16만6천명에 달했고 피해를 본 사람은 30억명이 넘으며 경제손실은 7천억달러(약 936조6천억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물 재난은 앞으로 더 빈번해지고 심각해질 전망이다.

WMO는 작년 발간한 '기후 서비스 현황' 연례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홍수가 과거 20년보다 134% 더 자주 발생하고 가뭄 빈도와 기간은 29%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중 최소 1달이라도 물을 충분히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 2018년엔 36억명이었으나 2050년이 되면 50억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WMO가 선정한 '물 스트레스 중점지(hotspot)'에는 한국도 포함됐다.

당장 남부지방 가뭄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17일 발표한 기상가뭄 1개월 전망에서 앞으로 한 달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쳐 다음 달 25일에도 남부지방 곳곳에 6개월 누적 강수량을 이용한 표준강수지수 기준으로 약한 또는 보통 수준 기상가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