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 "기업 인수할 땐 ○○○만 본다"

취임 1주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첫 단독 인터뷰

SK건설→SK에코플랜트로 사명 바꾼 후 체질개선 나서
SKT, 지주사 등 26년 몸담다 건설 계열사로 옮겨
환경 에너지 사업 두 축 앞세워 변화 시도
건축 주택사업 25%에 불과.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낮아. "체질 확 바꿔"
먼 바다 전기 수소와 암모니아로 만들고, 폐기물 처리는 IT로 고도화

폐 전자기기 처리업체 '테스', 해상풍력 기업 '삼강엠앤티' 인수
"내 비즈니스에 맞는 기업인지, 그 분야 최고인지만 보라."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수송동 본사에서 환경·에너지 분야 사업 전략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회사명을 보면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지 궁금해진다."
SK에코플랜트 임직원들은 요즘 지인들에게 명함을 건네면 이런 얘기가 돌아온다고 한다. 딱히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는 회사명 'SK건설'에서 1년 전 이 같이 바꾸면서다. 기업 정체성이 완전 달라졌다는 얘기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는 10대 건설사 가운데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건축·주택사업 비중이 25%에 불과해 국내 건설사들 가운데 가장 낮다. 건설기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다른 일을 더 많이 한다. 요즘은 폐기물 처리와 리사이클링을 골자로 하는 환경사업과 풍력, 수소, 연료전지 등을 주로 하는 에너지 사업이 기업 변화를 이끄는 양대 축이다. 미래에 필요한 기술을 사들이는 데 더 집중하면서 아예 기업 이름도 바꿔버렸다. 지난해 5월 사명을 SK건설에서 SK에코플랜트로 바꾼 것. 회사명만 봐서는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지 더 알기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딱히 신사업 업종에서 경쟁사를 찾기도 어렵다.


‘SK뷰’ 등 주택 브랜드로 알려진 SK건설의 정체성을 2년여 만에 완전히 뒤집어버린 인물은 이 회사를 이끄는 박경일 대표다. 박 대표는 지난 18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수송동 SK에코플랜트 사옥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건축물로 세상에 기여하는 기업은 너무나도 많다”며 “우리는 세상에 기여하면서 돈도 벌어들이는 대체불가능한 미래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본업인 건설업에서 사업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22년간 SK텔레콤에서 일하다가 2017년 SK주식회사로 왔습니다. 주로 계열사들의 경영상황을 체크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건설업이 그룹에서 미래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SK건설이 라오스 댐 붕괴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환경 회사로의 변화를 제가 제안했고 그 결과가 국내 1위 폐기물 처리 플랫폼 업체인 환경시설관리주식회사(EMC) 인수(2020년)였습니다. SK건설이 변화를 시작한 원년입니다.▶통신업에 몸담다 건설사 대표가 됐습니다. 매우 이질적인 산업으로 느껴집니다. 두 산업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유사한 점이 있다면 과거 경험이 지금 건설업 대표를 하시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고 계시는지요?

▷업을 단순 유지하려고만 했다면 저는 부적합한 CEO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적인 산업인 건설업에 디지털 혁신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신세기통신(SK텔레콤에 합병) 공채 1기 때 입사해 SK텔레콤에서 몸담으며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핸드폰을 ‘보조금제 도입’을 통해 대중화시킨 바 있습니다. SK텔레콤에서도 기존 업을 유지하는 일보다 케이블TV 업체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등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변화에 더 민감한 것이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사업 구조 변화에 반발은 없었습니까▷구성원들은 건설업에 몸담고 있는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각자 토목 기계 전기 등 잘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EMC를 사자고 했더니 반발이 심했습니다. 폐기물 소각 등은 환경이 열악한데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컸습니다. 건설업 기술력에 비해 환경업이 단순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내부 반발이 많아 여러 차례 간담회를 거쳐 회사 비전을 설득했습니다. 건설업에서 축적한 시공 노하우와 엔지니어링 역량을 바탕으로 환경·에너지사업과의 시너지가 기대됩니다.

▶환경업과 에너지사업은 시설 투자금이 많이 들고 수익을 쉽게 내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당장 눈에 잡히는 캐시카우(수익원)는 당연히 건설업이고, 미래 산업은 당장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장 성장세를 봐야 합니다. 지난 8월 인수 완료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작 업체 삼강엠앤티라는 업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울산과 전남에서 2.6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SK에코플랜트가 메이저 지분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지분참여를 계기로 해상풍력 건립에 드는 하부 구조물 등 EPC(설계·조달·시공) 일감, 미래 그린수소 생산을 우리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삼강엠앤티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해상 하부구조물 제조기술을 갖고 있죠.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 /김범준 기자
▶현재 준비하고 있는 신사업이 있나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은 해저면에 기초를 세우지 않고 먼 바다에 풍력발전기를 부표처럼 띄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방식입니다. 입지 제약에서 자유롭고 환경 및 자연경관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고 어업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육지나 근해에 비해 빠른 풍속을 이용한 고효율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단, 먼 바다로 까지의 송전선이 연결되지 않으면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다 소화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남는 전기를 버릴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수소로 바꿔주면 오래 보관할 수 있죠. 그럼 수전해 기술이 필요한데 이건 누가 할 건가요. 앞으로 2030년이 되면 수전해 시장은 100배 넘게 커질 것이고, 현재 긴밀히 협력 중인 블룸에너지와 SK에코플랜트가 수전해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제가 요즘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해외 사업은 전기를 다른 물질로 치환하는 기술입니다. 어떤 국가에서는 현재 육상 풍력을 통해 얻은 전기를 옮기는 일감을 수주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풍력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소로 전환한 다음, 부피가 큰 수소를 옮기기 편리하도록 다시 암모니아로 바꿔 항구까지 실어날라주는 일입니다. 육상 풍력은 어느 나라나 할 수 있지만 남는 전기를 그린수소로, 또 운반이 용이한 암모니아로 바꾸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지요

▶적지 않은 기업을 사들였습니다. 인수할 유망기업을 어떻게 골라냅니까.

▷가끔 사람들은 자기 능력을 과신합니다. 일시적인 어려움에 빠진 기업도 내가 손을 대면 마법처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수 합병(M&A)을 추진할 때는 딱 한 가지만 봅니다. ‘우리 사업과 맞고 그 분야 최고인지’ 입니다. 이미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회사를 인수해야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올 2월에 인수한 전자기기 폐기물 처리 업체 ‘테스’를 예로 들겠습니다. 처음에 테스는 매각 대신 IPO(기업공개)를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실무자가 테스 대신 다른 대안 인수기업을 들고 왔길래 다 거절하고 무조건 원안대로 성사시키라고 지시했죠.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의 매력은 기술력보다도 네트워크입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폐 휴대폰 처리를 몇 년째 믿고 맡깁니다. 휴대폰 데이터를 정보유출 없이 완벽하게 삭제하는 능력으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기술력 뿐만 아니라 전자 폐기물과 전기차 폐배터리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고 인수한 것입니다.

삼강엠앤티를 인수했을 때도 조직 내부에서는 왜 제조업체를 사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삼강의 용접 기술력만 보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가 가진 땅을 봤습니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을 제작하려면 충분한 ‘야드’(작업공간)가 필요한데 삼강은 기존 99만1735㎡(30만평)외에도 165만2800㎡(50만평)의 부지를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미래에는 야드를 가진 해상풍력 기업만이 성장할 것이라 봤습니다. 결국 내가 가려는 그 길에 필요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테스는 네트워크, 삼강은 야드를 본 것입니다.

▶폐기물 소각 같은 환경사업은 주로 중소기업의 몫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진출에 논란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환경사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지방의 영세업체가 주도했던 1세대, 글로벌 펀드들이 수익성 위주로 참여했던 2세대, 그리고 3세대 환경사업은 대기업이 진출했을 때를 뜻합니다. 대기업이 하면 달라야 합니다. 철저하게 룰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해내야 하죠. 기술을 접목해 산업을 고도화하고 지역과도 상생하면서 가야 합니다. 최근 소각장 시설에 아마존웹서비스(AWS) 와 협력을 통해 AI 솔루션을 도입해 불완전연소를 막는 최적의 소각 온도를 찾아낸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거에는 폐기물을 소각해주고 얻는 매출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스팀 열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여기서 나오는 폐열 발전과 스팀 판매 매출이 30% 정도 됩니다. 조만간 폐기물 소각매출과 전기 스팀 등 에너지 매출이 5대 5로 비슷해 질것입니다. 폐기물을 처리해주는 비즈니스를 하다가 에너지도 팔게 됐죠.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 /김범준 기자
▶이제 국내에서 아파트는 점차 짓지 않을 생각입니까

▷주택사업을 안하려는 게 아니라 다르게 하려는 겁니다. 최근 ‘드파인’ 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놨는데 비싸고 고급진 아파트를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프리미엄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드파인은 에너지 최적화 및 장수명 구조, 저탄소 공법 등 친환경 시스템을 적용하고,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개발한 연료전지와 가장 선진화된 아파트 폐기물 처리 기술 등을 도입하는 단지가 될 겁니다.

▶어떤 기업, 어떤 기업인이 되고 싶습니까▷대학생 시절 읽었던 ‘메가트렌드 2000’(1982년, 존 나이스비트) 이라는 책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휴대전화는 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이행을 점쳐 화제가 됐습니다. 제가 나온 대학 학과는 군 복무를 마치면 대개 고시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고시를 대신해 기업인으로 삶을 선택해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세기통신에 몸담은 계기였습니다.

기업인이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없을 수 없지만, 무작정 돈을 많이 버는 건 결코 제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대체불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만의 기술과 능력으로 지구상에 없는 기업을 만들고자 합니다. 최근 만난 유럽의 한 투자자에게 저를 한 번 꼭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해상풍력에서 연료전지까지 다 하는, 뭐 이런 기업이 다 있는지 궁금했다"는 것입니다. SK의 지향점인 ‘사회문제 해결도 하면서 돈도 버는’ 비즈니스를 제대로 실천하고, 환경과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