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전기, '아시아 물류허브' 싱가포르 투아스港에 자동크레인 컨트롤러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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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일본 등 글로벌기업과 경쟁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로에 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을 살려 아시아 물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대적인 신항만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섬의 서쪽에 있는 ‘투아스(Tuas) 항만개발 프로젝트’다.
340억 규모 '크레인 시스템' 수주
컨테이너·트럭 등 영상 자동 인식
딥러닝 기술로 항만 안전성 강화
창업 이후 20여국 항만사업 참여
"전문 분야에 집중한 송곳 전략
글로벌 기업과 싸움에서 승리"
이 프로젝트는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대형 항만(Mega port)’을 조성하고 있어서다. 싱가포르는 이 일대를 매립해 투아스항을 건설하고 기존에 산재한 탄종 파가르, 케펠, 브래니와 최근 기능이 향상된 파시르 판장을 포함해 4개 항만을 2040년까지 모두 투아스항으로 통합 이전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투아스항의 선석은 64선석으로 늘어난다. 동시에 64척의 배가 항만에 접안할 수 있다는 의미로 부산신항(18선석)의 3배가 넘는다. 연간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은 최대 6500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 터미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만 큰 게 아니다. 각국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첨단 운영시스템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부두와 야드 운영을 자동화해 항만 및 해양 서비스를 위한 자원의 배치를 최적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을 이용해 자동화 부두와 항만 작업, 전자동 이동 수단 등 자동화 설비를 갖춰 물리적인 항만을 넘어 디지털 및 자동화한 항구로 자리 잡게 추진하고 있다.
투아스항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크레인 자동화다. 첨단기술을 적용한 자동화 크레인은 무인으로 운영된다. ‘레일 위를 달리는 갠트리 크레인(RMG)’과 ‘이중(double) 트롤리 안벽크레인’ 등의 기술을 적용했다. 이 크레인을 자동으로 운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컨트롤러 덕분이다. 컨트롤러는 크레인의 두뇌에 해당한다.여기에 컨트롤러를 공급하는 업체가 경기 안양시에 있는 서호전기(회장 이상호·사장 김승남)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340억원 규모의 ‘크레인 제어시스템’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상대는 중국 기업(상하이전화중공업)이다. 이 금액은 서호전기의 작년 매출(743억원)의 약 46%에 이르는 것이다. 계약기간은 올 10월에 시작해 내년 10월 끝난다. 일본과 유럽의 쟁쟁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 따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상하이전화중공업은 자사 크레인에 서호전기의 제어시스템을 부착해 싱가포르 투아스항에 설치한다.
김승남 사장(63)은 “수출입 화물은 주로 컨테이너에 실려 운반되고 이를 옮기는 크레인은 수동형과 자동형으로 나뉜다”며 “수동형은 운전자가 크레인을 작동하고 자동형은 컨트롤러가 이를 움직이는데 우리는 이중 크레인 자동 운전용 컨트롤러를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잇따라 수주에 성공한 배경을 묻자 “딥러닝 컨트롤러로 항만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첨단기술을 장착했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항만 자동화 관련 영상인식 시스템’은 기존 자동화에서 한걸음 나아가 항만 적재·하역 작업 중 안전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장치다. 무인 자동화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작업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서호전기가 최초로 개발했다. 김 사장은 “컨테이너와 트럭, 바닥 마킹, 사람 등을 영상으로 신속히 인식해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하거나 하역할 때 위험 여부를 즉각 알려준다”고 설명했다.서호전기는 항만 크레인 컨트롤러와 인버터를 생산하다 수년 전 인버터는 별도 법인인 서호드라이브로 분리했다. 국내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항만 분야에선 꽤 유명한 업체다. 최근 5년 이상 이 회사 매출 중 해외 프로젝트가 80%를 넘어선다. 이 회사는 경기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이상호 회장(75)이 1981년 창업했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항만 자동화 사업을 이끄는 김승남 사장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와 같은 대학원에서 자동제어를 전공한 뒤 알스톰에서 12년간 근무하고 1990년대 말 서호전기로 옮겼다. 2015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초창기엔 전선 기계 등을 생산했다. 자동화 컨테이너 크레인은 2000년대 초반 광양항을 시작으로 부산 신선대 터미널에 5대, 현대부산신항에 38대의 자동운전 시스템을 공급하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했다. 서호전기는 싱가포르의 ‘파시르 판장’ 자동화 터미널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총 130대(10선석 분량)의 ‘자동화 야드 크레인(ARMG: automatic rail mounted gantry crane)용 컨트롤러’를 수주해 구축한 경험도 있다.
이 회사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와 중남미(멕시코 파나마 등) 20여 개국에 이 시스템을 공급했다. 특히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 △사람 감지 시스템 △트럭 번호 인식시스템 및 방법 △트럭 헤드 인식과 인접 컨테이너 감지 시스템 및 방법 △컨테이너 안전 감시 방법 △컨테이너 적재 시스템 및 방법 등 20여 건의 발명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제품을 개발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과 달리 서호전기는 크레인 자동화 컨트롤러라는 송곳 전략으로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은 “국내 신항만 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꾸준한 신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적인 항만 크레인 자동 시스템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