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스 쇼업' 본선 오른 10개 스타트업에 눈과 귀가 쏠린 이유 [긱스]

가상인간으로 회사 설명해 눈길
제주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으로
17일 제주시 오등동 피커스에서 열린 한국경제신문의 오픈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데모데이 ‘긱스 쇼업’ IR경진대회에서 나타난 '가상 인간' 진승혁 클레온 대표. /김범준 기자
“제가 진승혁 대표보다 더 잘생겼습니다.”

화면 안의 남자는 가상 인간을 만드는 스타트업 클레온의 진 대표를 쏙 빼닮았습니다. 가상 인간이 된 진 대표는 설명을 이어갑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발표는 제가 진행할 예정이며, 여러분들이 주신 질문에만 ‘진짜’ 진 대표가 답변드릴 예정입니다.” 지난 17일 제주 피커스에서 열린 긱스 쇼업 스타트업 기업설명(IR) 경진대회에선 유례없는 가상 인간 데모데이 프레젠테이션(PT)이 진행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CVC 베테랑’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렇게 참신한 PT는 처음”이란 평가를 남겼습니다.이날 IR에는 클레온을 포함해 총 10개 스타트업 대표가 발표에 나섰습니다. 서류 평가를 거쳐 마련된 본선 무대엔 전국을 대상으로 선발된 스타트업 5곳(클레온‧포엔‧아이핀랩스‧모빈‧블링커스)과 제주 지역 스타트업 5곳(다자요‧블루웨일컴퍼니‧퀀텀솔루션‧네이앤컴퍼니‧나눔에너지)이 올랐습니다. 총상금 3000만원을 둘러싼 업체 경쟁은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지면으로 채 담아내지 못한 이들의 PT 현장을 전달합니다.


"수익 낼 수 있다"…5개 업체 한목소리

PT 1부의 서막을 연 클레온은 3가지 솔루션을 통해 회사를 소개했습니다. 디지털 휴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솔루션 ‘클론’, 다국어 자동 더빙 솔루션 ‘클링’, 개개인을 위한 디지털 휴먼 모바일 서비스 ‘클론 세일즈’가 그것입니다. 발표에 나선 가상 인간 진 대표는 “앉아계신 몇 분은 저희를 단순히 스쳐 가는 트렌드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진승혁 클레온 대표. /김범준 기자
클레온이 주력한 발표 방향은 ‘누구에게 솔루션을 팔아 돈을 벌 것인가’였습니다. 먼저 클론 서비스는 아나운서‧호텔리어‧행사 진행자 등 정보 전달자, 변호사‧의사‧세무사 등 전문직 대체한다고 명시하며, 생명보험사에 지점별 가상 인간 안내원을 도입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가상 인간 제작 비용은 초기 도입비 400만 원, 인당 월 100만 원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솔루션도 있습니다. 보험사‧자동차사‧제약사‧학습지사가 잠재 고객인 클론 세일즈의 는 현재 모바일 앱으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비용은 월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로 책정됩니다. 클링은 콘텐츠별로 수백~수천만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습니다.

포엔의 최성진 대표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이폰에 ‘리퍼폰’이 있듯, 전기차 배터리의 ‘리퍼비시(재정비) 배터리’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 말한 그는 현대자동차 근무 시절 친환경차 폐기업무를 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배터리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모듈 단위 재조합을 통해 배터리 순환 생태계를 이끌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대기업과의 협력 구도도 강조됐습니다. 포엔은 현대자동차 사내 벤처로 출범해 투자 계약을 끌어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차의 배터리 재제조 계약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올해엔 중국 배터리사 CATL의 한국 내 품질 평가 업무를 진행하고 있고, 기아 전기차인 ‘니로 플러스’에 리퍼비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을 굳건히 하고 지역 거점만 확장한다면, 5년 안에 1000억원 이상 매출액을 달성하고 유니콘기업이 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재현 아이핀랩스 대표는 실내 위치를 추적하는 클라우드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만듭니다. 그는 “전 세계 어디든 단 하루 만에 서비스 배포가 가능하다”는 표현으로 발표를 시작하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위치 추적 솔루션은 쇼핑몰부터 건설 현장까지 활용 폭이 넓습니다. 기존엔 휴대용 하드웨어(HW) 기기를 나눠주고 데이터를 모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아이핀랩스는 휴대폰을 활용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습니다. 유 대표는 “지금 발표하는 장소를 사람 1명이 30분정도만 돌아다녀도, 50cm 미만 위치까지 추적하는 정확한 트래킹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별내선 복선전철 건설 현장에서 진행한 솔루션 실증 영상을 선보이며 “1차 타깃인 건설사는 수천억원의 공사 비용 중 2%가량을 안전 비용으로 쓰게 돼 있다”며 “건설사 공략 이후엔 지하 주차장 등 적용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베타 서비스는 내년 초 출시 예정입니다.
최진 모빈 대표가 자사 배달 로봇을 영상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최진 모빈 대표는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로 발표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장애물 극복 자율주행 로봇’이란 독특한 창업 아이템을 선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발표 내내 두 가지 요소를 강조했습니다.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자사 배달 로봇의 확장성입니다.

최 대표는 “경쟁사들은 배달지를 평지로 한정해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배달을 제공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퀴 4개가 달린 모빈의 배달 로봇은 이들과 달리 계산을 오르는 등 장애물을 스스로 넘어설 수 있습니다. 공원형 아파트 이외에도, 계단이 많은 일반 아파트에서 구동이 하능한 것입니다. 신축성이 뛰어난 특수 바퀴와 방향 전환 보조 시스템은 영상을 통해 보인 모빈 로봇만의 특징입니다. 내부 자율주행 시스템은 KAIST와 공동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15건의 기술 특허, 2건의 디자인 특허를 출원해 후발주자가 같은 로봇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편의점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를 완성하고, 추후 1조 8000억원 시장 규모의 음식 배달 분야까지 24시간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박상욱 블링커스 대표. /김범준 기자
블링커스의 박상욱 대표는 ‘최초’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는 “와인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오른다”며 “‘뱅크 오브 와인’은 세계 최초의 와인 및 주류 대체불가능토큰(NFT) 투자은행”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링커스의 뱅크 오브 와인은 현물 와인에 투자할 수 있는 NFT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정품 진위성과 함께 와인에 대한 경험과 이력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지점입니다.

그는 “와인을 수령하고 마시는 과정을 기록하는 ‘MMFT’는 블링커스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NFT”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와인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같이 마신 사람에게도 NFT가 제공되는 개념입니다. 박 대표는 또 “KAIST와 세계 최초로 와인 금고 기술을 개발했다”며 “진동 제어, 온도 및 습도 제어를 통해 투자 대상인 현물 와인의 가치도 오롯이 보존할 수 있는 체계”라고 발표했습니다.


'스타트업 요람 제주', 지역 아이디어 빛났다

2부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한 지역 스타트업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는 세밀한 수치와 표로 ‘우리 사업은 수익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다자요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은 빈집을 무상 임대받아 수리하고, 이를 소비자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는 “집 재생 비용이 2억5000만원, 300일 기준 90%가 가동되며 감가상각비와 운영비를 제외하면 한 채당 5600만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업 확장 방향 역시 비즈니스 모델의 수익성과 결부해 발표됐습니다. 그는 “토지 현물투자 등 다양한 공간 의뢰가 오고, LG나 다이슨을 포함한 업체는 이를 제품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주식‧채권형 크라우드 펀딩뿐 아니라 ‘주주 별장’을 통한 회원권 방식 펀딩, 특수목적법인(SPC) 기반 펀딩, 프로젝트 펀딩 등 다양한 금융 조달 방식을 갖추고 사업을 확장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오상혁 블루웨일컴퍼니는 ‘공간의 에어비앤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발표 첫 문장으로 선택했습니다. 업체는 상점이나 빌딩에 남은 자투리 공간(유휴 공간)을 중개하는 사업을 합니다. 오 대표는 발표 초반 “전국 80% 지역에 5000개 유휴 공간을 확보한 상태”라며 사업 확장 기반이 충분하다는 점을 알리는 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이후엔 수익 모델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유휴 공간 매칭에서 공간주가 등록한 평당 단가의 최대 20% 수익을 받고, 물품 적재는 박스당 최소 5~8% 수수료를 받는다”며 “추가로 공간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 사업자에게 매출액을 일으키는 기회도 생겨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시간 보관 검색 매칭 플랫폼, 충전 설치 및 인증 서비스도 구현해 내년 매출액 50억원, 향후 2000억원대 수익을 벌어들이겠다고 포부도 밝혔습니다.

전기차 관련 아이템은 2부에도 쏟아졌습니다. 장태욱 퀀텀솔루션 대표는 타깃 고객군을 두 가지로 나눠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고객은 전기자동차를 소유한 법인 회사”라며 “퀀텀솔루션의 배터리 건강 측정 기술을 통해 많은 전기자동차를 지닌 법인에 최적의 충전 스케줄을 재현해준다”고 전했습니다. 두 번째 고객은 전력을 판매하는 사업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분산에너지 활성화법을 통해 누구나 전력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며 “고객이 신품 대비 저렴한 사용후 배터리를 확보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자체 개발한 ‘간편 진단기’에 대한 소개도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나 쉽게 차량 배터리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간편 진단기를 통해 배터리의 잔존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측정된 정보는 앱 형태를 기반으로 전달돼 전기차 입고부터 매매까지 모든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습니다.

네이앤컴퍼니 심성보 대표는 자사의 친환경 모빌리티 플랫폼 ‘네이버스’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버스‧지하철‧공유자전거‧전동킥보드‧EV렌터카 등 5대 모빌리티를 친환경 수단으로 정의하고, 최적 길 찾기와 결제‧탄소배출 저감 촉진을 위한 챌린지 리워드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통 편의성을 증가시킨 플랫폼이 친환경 요소까지 갖췄다는 것이 심 대표가 발표 전반에서 내세운 자사 강점입니다.
친환경 모빌리티 플랫폼 '네이버스'를 소개하는 심성보 대표. /김범준 기자
기술 전문성과 수익성도 틈틈이 강조했습니다. 그는 “자체 개발한 딥러닝 기술을 통해 사용자 이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친환경 통계 알고리즘까지 만들어가고 있다”며 “핵심 수익모델엔 가상 정류장 기반 플랫폼 광고, 사용자 이동 패턴 기반 타깃 광고 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와의 모빌리티 마이데이터 실증 사업, 울산시와의 스마트 관광도시 사업 등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도 언급됐습니다.

나눔에너지는 태양광 발전기 분야에서 ‘래피드 셧다운(발전 긴급 차단 시스템)’이 탑재된 출력보상장치(옵티마이저)를 만듭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양광 엔지니어로 활동했는데, 화재 발생 시 소방관이 진입하며 태양광 기기에 감전 사고를 당한 사례가 많아졌다”며 “2017년부터 미국에 해당 시스템 탑재가 의무화되며 시장이 급성장 중”이라고 했습니다. 양지혁 나눔에너지 대표는 발표에서 “자사 브랜드 ‘옵티몬’은 지난해 글로벌 400개 특허 청구항을 하나씩 분석해 만든 솔루션”이라며 “미국‧중국‧호주 등 13건의 해외 특허 출원도 마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도 밝혔습니다. 그는 “2025년쯤 옵티몬이 미국에 진출할 텐데, 태양광 도면을 그려주는 서비스를 이달 미국에 론칭해 바탕을 다지고 있다”며 “한화큐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도 협업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참 한 가지 더

투자사 질문으로 파악하는 데모데이 공략법
긱스 쇼업 심사위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인쪽부터 방기현 뉴레이크얼라이언스 부사장, 김우겸 더웰스인베스트먼트 전무, 이규호 현대차 제로원 책임매니저, 김준식 CJ인베스트먼트 CIO,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 /김범준 기자
제주에서 1회차를 맞은 '긱스 쇼업' 행사에선 다양한 투자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긱스 쇼업 심사위원장을 맡은 GS건설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의 이종훈 대표가 심사와 CJ그룹의 CVC CJ인베스트먼트 김준식 최고투자책임자(CIO), 이규호 현대차 제로원 책임매니저, 더웰스인베스트먼트의 김우겸 전무, 사모펀드 운용사 뉴레이크얼라이언스의 방기현 부사장이 현장에 참석했습니다.

공통적으로 나온 질문은 사업 리스크를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김 CIO는 포엔에게 "완성차 업체가 경쟁자로 진입할 가능성을 설명해달라"고 물었습니다. 이규호 책임매니저 역시 아이핀랩스에게 "사실 실내 위치 추적 사업은 레드오션에 가깝다"며 "다른 경쟁사 대비 확실한 우위가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우겸 전무는 클레온을 상대로 "가상 인간 기술은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질 정도"라며 "다음 단계의 기술로 개발하고 있는 내용이 있는지 소개해달라"고 질문했습니다.수익성도 심도 있게 따졌습니다. 업체들이 집중한 발표 내용이기도 합니다. 방 부사장은 나눔에너지에 "에너지 절감, 효율성 개선 솔루션은 고객사들이 적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보조금으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은 없는가"를 질의했습니다. 이종훈 대표는 다자요를 상대로 "집을 재생한다는 개념이 투자사 입장에선 수익화가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며 "보다 빠른 플랫폼 확장 방안으로 준비하는 것은 없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날 데모데이 우승은 배터리 재제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강조한 포엔이 차지했습니다. 사업의 희소성과 수익성이 돋보인 모빈과 나눔에너지는 공동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