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죽음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 유족 첫회견

참사 유족 24일 만에 첫 기자회견 열어
진정성 있는 사과·철저한 책임 규명 등 요구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이태원 압사 참사 유가족·부상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는 가운데,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족들이 함께 입장을 밝힌 것은 참사 24일 만에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스탠다드빌딩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 주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 나선 사망자 송은지 씨의 아버지는 "이태원 도로 한복판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며 "행안부 장관 이상민, 용산구청장 박희영, 용산경찰서장 이임재, 112치안종합상황실장 류미진에게 꽃다운 우리 아들 딸들 생명의 촛불이 꺼져갈 때 뭐하고 있었냐고 묻고 싶다"고

딸 민아 씨를 잃은 이종관 씨는 "이 참사와 비극의 시작은 13만명 인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라며 "당일 경찰이 기동대를 투입하지 않은 것은 일반 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시위 관리나 경호 근무에 매몰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참사 후 정부는 유족들의 모임을 구성하지도, 심리적 안정을 취할 공간을 확보하지도 않았다"며 "다른 유족들과 합동 봉안당을 만드는 것을 의논해보고 싶었는데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유족 몇 분을 만날 수가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됐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 / 사진=뉴스1
사망자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 증명서를 들어 보이며 "사망 원인도, 장소도, 시간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아들을 떠나보낼 수가 있겠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민변은 TF를 구성한 이래 현재까지 희생자 34명의 유족 요청을 받아 법적으로 대리하고 있다. 지난 15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희생자 34명의 유족과 간담회를 거쳐 이번 기자회견 개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참사 유족들은 회견에서 6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진정한 사과 △성역 없이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과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이다.민변의 서채완 변호사는 "앞으로 어떤 법적 조치를 할지는 유족들과 협의 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태원 압사 참사 유가족과 부상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당·정 주도로 국가 과실 인정 여부에 따른 배상 또는 보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유가족에게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드리기 위해서라도 실체적 진실 파악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