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립대 적자 14배 부풀린 대교협의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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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오류에도 사과 없이 침묵“한국 사립대는 2021년 2조1471억원 운영수지 적자를 냈다. 절대적 규모의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
대학지원책 신뢰도 균열 우려
최만수 사회부 기자
지난 20일 전국 4년제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충격적인 자료를 내놨다. 14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 많이 알려졌지만,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여러 언론은 이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다.그런데 하루 만인 21일 대교협은 전국 156개 사립대의 운영수지 적자 규모가 1555억원이라며 슬그머니 정정자료를 냈다. 사립대가 2012년부터 10년째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고 언급한 부분도 2017년부터 5년째 적자라고 오류를 수정했다.
적자 규모를 무려 14배나 부풀려 발표한 것이다. 단순 해프닝이라고 보기엔 데이터 격차가 너무 컸다. 게다가 대교협은 정정자료를 통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대교협 관계자는 “내부 직원의 계산 실수 때문”이라며 “운영 손익은 운영 수익에서 비용 등을 뺀 값으로 계산하는데, 최초 보고서에선 운영 수익에서 국가장학금 규모를 빼고 계산해 오류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을 단순 실수로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건 자료를 발표한 시점 때문이다. 최근 교육계는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에 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대학에 떼어주는 교부금 개편안을 놓고 둘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대교협은 대학 측 논리를 지원 사격하기 위해 최근 3주 연속으로 고등교육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 6일에는 고등교육 투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이는 교육부의 ‘고등(대학)·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 신설안’에도 인용됐다.
하지만 이번 오류 사건으로 기존 보고서들의 신뢰성에도 금이 갔다. 정부 지원을 촉구하려던 목적에만 매몰돼 단순 수치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데이터 마사지’를 가한 자료를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대학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잊을 만하면 터진 사학 비리 등으로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다. 정치권에서 등록금 인상 규제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것도 부정적 여론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교협의 신중하지 못한 대응은 더욱 아쉽다.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정정자료 하나로 이번 사건을 수습하려 한다면 ‘양치기 소년’이란 꼬리표만 붙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