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용의 한류 이야기] 한류 30년…세계 속 스며든 'K콘텐츠 저력'을 기억하는 자세

지난해 6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2022년 9월 24일에 영국 런던에서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라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며, 그 행사의 일환으로 같은 제목의 책을 낼 예정이니 3000자 정도의 글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책에 들어갈 이미지 10여 개를 준비해 달라고도 했다. 부탁받은 내용은 디지털 한류였고, 이 중에서도 e스포츠와 K팝에 관한 것이었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 뮤지엄의 한국계 여성 큐레이터로부터였다. 정확히 올해 9월 24일 V&A에서 한류 전시회가 시작됐다. 내년 6월까지 일정이다. 같은 제목의 책도 전시회에 때맞춰 발간됐다. 일반적인 학술서 형식의 판형이 아니라 주로 도화지를 사용한 디자인이나 여성지에 쓰이는 국배판(210×297㎜)이었다. 전 페이지가 컬러로 꾸며졌다.

책을 받아보거나 사본 사람은 아직 많지 않겠지만 런던에서 열린 전시회는 많은 미디어 보도를 통해 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외신 보도가 있었고 국내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시기적절한 전시,’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린 멋진 기획’이라는 찬사가 대부분인 가운데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 범위를 벗어난 전시가 여럿 포함됐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해설이 있기도 했다. “한국이 세계의 팝문화에 가장 주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전제하에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를 통해 한류의 본질을 파헤쳐보는 것”이 전시의 기획 의도였으나 전시회 자체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넘어서고 있어 혼란을 가져온다는 분석이었다. 책에서도 전시회 기획자(Rosalie Kim)가 직접 쓴 서문에 서울 압구정동에서 소가 쟁기를 끌고 있는 과거 장면과 6·25전쟁 당시 38선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사용했다. 빛나는 한류의 이면에 힘들고 가난했던 과거의 모습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시회와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는 별개로, 한류 특별 전시회와 책이 어떻게 런던에서부터 출발됐는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시작됐고 1997년을 전후해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인기를 끌면서 본격화됐다. 1990년대 초반, 한류라는 말이 아직 없었을 때 한국 드라마가 이들 국가에서 상영되기 시작했고 대중음악 가수들 역시 대만과 일본 등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한류가 내년에 30주년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계 큐레이터에 의해 주도된 한류 행사가 런던에서 시작된 반면, 국내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친 꼴이 됐다.

한류는 해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외국에서 시작된 전시회와 저술활동 자체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류의 소프트 파워 역할을 강조하며 공공외교의 핵심으로 거론하는 정부는 물론이고 한류는 방송 영상 대중음악 분야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서로 강조하던 문화산업계, 한류를 관광상품화하면서 연계성을 강조하던 여행업계, 그리고 한류의 역사화와 보도를 담당해야 할 학계와 언론계 등 어느 분야에서도 이 같은 기획을 단행하지 않았고 아직도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얻는 막대한 홍보·관광 효과는 물론 이를 통한 국가 이미지 향상이라는 직접적인 효과를 얻어내지 못한 채 말이다.

한국 대중문화계는 2019년 서울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가 개봉된 1919년을 한국영화의 원년으로 삼아 100주년 행사를 열었다. 한국 만화계도 1909년 한국 최초의 만화가로 여겨지는 이도영 화백의 만화가 대한민보에 게재된 것을 그 원년으로 삼고 있다. 100년이 지난 영화와 만화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잘 정리돼 있고 기록화된 반면 30년도 안 된 한류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웹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원이 기록돼 있지 않다. 현대 대중문화의 큰 획을 긋고 있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역사적 기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관련 전시회 등 역시 힘을 모아 국내에서도 제대로 마련해야 할 때다.

진달용 사이먼프레이저대 특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