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 맞춤형' 전파 규제 개선을 환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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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연구개발 현장과 같이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산업현장에는 애로사항이 있다. 첨단 장비, 대체 불가능한 특수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품을 교체하거나 장비를 수리할 때 관련 평가 등을 거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특히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된 반도체 관련 장비는 기능 개선을 위해 부품이 바뀌는 경우가 잦다. 이런 것을 수리할 때 ‘새 부품’으로 분류되는 것이 있으면 기술 준수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받은 제품의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은 원래는 평가 면제 대상이지만, 부품의 일부 회로 구성이 변경됐다는 이유로 새로운 부품으로 판정된 일도 있다. 업체들에는 새 평가를 받기 위한 돈도 시간도 부담이고, 쓰는 쪽에서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용 기자재에 대해 적합성 평가를 면해주는 내용의 디지털산업 활력제고 규제 혁신 방안을 내놓은 것은 그래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산업현장에서 특수 용도로 사용하는 소량의 산업용 기자재에 대해서는 전자파 등 실생활에 영향이 미미한 점 등을 고려해 적합성 평가를 면제해 주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내년 1월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접근 통제가 이뤄지는 제한된 공간에서 사용되고 유통기록 관리가 가능한 산업용 기자재’는 적합성 평가가 면제된다. 또 수입 시 신속한 통관이 가능하게 돼 반도체 등 첨단 생산설비 납품 및 유지·보수 업계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번 제도 개선은 정부가 전자파 적합성 평가 제도를 일률적인 사전규제가 아니라 개별 대상 기기의 특성과 용도, 기업의 품질 관리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맞춤형 제도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연구개발 및 생산환경은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제 공급망 사슬이 바뀌기도 하고, 소비자 요구는 점차 다양해진다. 신제품 출시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융복합 및 다품종 소량생산 분야 확대 추세도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환경변화 상황에서 전파 규제 패러다임에는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5세대(5G) 통신을 넘어서 6세대(6G) 통신,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저궤도 위성통신 등 전파의 활용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전파를 어떻게 규제하는지는 국내 정보통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전파규제 개선은 정부와 업계 간 소통을 통한 맞춤형 규제혁신을 실현하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런 개선이 지속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