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재 원료, 中에 100% 의존…IRA 앞둔 K배터리의 '약한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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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화리튬 수입 1년새 6배 폭증배터리에 리튬을 공급하는 양극재는 용량과 출력을 결정하는 에너지원으로, 배터리 원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에코프로비엠,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 등 국내 양극재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문제는 ‘K양극재’에 들어가는 원재료의 대부분이 중국산이라는 점이다. 양극재 1t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구체 1t과 리튬 0.5t이 필요하다. 국내 업체들은 올 1~10월 양극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을 중국에서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어치 들여왔다. 전년 동기 대비 6배 이상 불어났다. 중국 수입 의존도는 86.1%에 달한다.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에 쓰이는 전구체는 99.9%가 중국산이다.
국내 업체 주력하는 NCA전구체
점점 의존도 늘어 '100% 중국산'
광물 매장량 극히 적은 핀란드
니켈 등 제련시장 점유율 확대
전문가 "우리가 벤치마킹 해야"
공급망 장악한 中
24일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10월 국내로 들여온 니켈·리튬·코발트·흑연의 평균 중국 수입 의존도는 84.3%에 달했다. 광물을 가공·제련한 화합물 기준으로는 전체 11개 중 황산니켈, 탄산리튬, 황산망간을 제외한 8개가 중국산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황산니켈은 핀란드, 탄산리튬은 칠레, 황산망간은 벨기에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배터리 광물 채굴 시장에서 리튬 13%, 코발트 1%, 니켈 18%, 망간 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광물은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 주로 분포돼 있다. 반면 제련 시장에서 중국은 리튬 44%, 코발트 75%, 니켈 69%, 망간 95%를 점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광물 가공·제련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할 수 있고 공정이 노동집약적이어서 대부분 제련시설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블랙홀’처럼 해외 광물 자원을 싼값에 대거 빨아들인 것도 제련시설이 중국에 집중된 또 다른 이유다.
이렇다 보니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의 국제 가격은 미국 달러가 아니라 중국 화폐단위인 ‘위안’으로 책정된다.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가 남미의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염호(소금호수) 등 ‘리튬 삼각지’에 몰려 있지만 중국이 수산화리튬 등 리튬 화합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튬 가격은 지난 23일 ㎏당 557.5위안(약 10만7000원)으로, 1년 전(175.5위안) 대비 세 배 넘게 급등했다. 광물 가격 인상에 따른 이익을 중국이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뜻이다.
양극재 업체들 “발등의 불”
국내 양극재 업체들은 내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IRA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은 내년부터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한 광물을 40% 이상 적용한 배터리를 장착해야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대당 7500달러)을 받을 수 있다. 이 비중은 매년 10%포인트 높아져 2027년엔 70%로 올라간다.국내 ‘빅3’ 양극재 업체는 하이니켈 양극재 제조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광물·소재 밸류체인을 중국에 의존하는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뒤늦게나마 중국 업체에 의존했던 광물 제련·가공 공정을 내재화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케미칼이 잇따라 캐나다 퀘벡주에 양극재 공장을 짓는 이유도 탈(脫)중국화를 통해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선 핀란드의 2차전지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핀란드는 광물 매장량은 극히 미미하지만 황산니켈에 이어 수산화리튬 제련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박현성 KOTRA 핀란드 헬싱키무역관장은 “핀란드 정부는 일찍부터 배터리 케미컬 밸류체인 구축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