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 다 파네" 비웃었는데…앉아서 1000만원 번 '이 굿즈'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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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파는 ‘테슬라 굿즈’“지상 최고의 향기! ‘번트 헤어(Burnt Hair)’ 향수를 사주시면 제가 트위터를 살 수 있습니다”
'200개 한정' 서프보드 웃돈 1000만원 붙어
화염방사기로 매출 133억…"선 넘었다"논란
'자동차 회사 불문율' 술도 팔아…당일 완판
'테슬라 반바지'로 공매도 조롱, 투자자 환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인수가 임박했던 지난 10월. 그는 뜬금없는 향수 트윗을 잇달아 날렸습니다. 머스크의 터널 굴착 기업인 보링컴퍼니가 출시한 향수 ‘번트 헤어’를 홍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머스크향과 같다는 점을 언급하며 “향수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100달러(약 13만원)짜리 이 상품은 일주일 만에 3만 병이 완판됐습니다. 테슬라는 자사 온라인몰을 통해 전기차 외에 다양한 굿즈를 팔고 있습니다. 굿즈는 브랜드 로고나 특정 인물 등의 이미지를 디자인에 접목한 일상 용품입니다. 자동차 액세서리, 의류, 아웃도어용품, 기념품 등의 판매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하는 부대사업입니다. 머스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독특한 ‘펀(fun) 코드’를 굿즈에 담았습니다. 본인 특유의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동차 회사에서 도저히 팔 것 같지 않은 괴짜 상품을 선보인 겁니다.
공매도 조롱한 ‘테슬라 쇼트 팬츠’
테슬라의 ‘괴짜 굿즈’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반바지입니다. 머스크는 2018년 트위터로 ‘짧은 반바지(Short shorts)’를 판다고 공언합니다. 머스크에겐 평생의 적(敵)인 공매도(Short Selling) 투자자를 비꼬는 말이었습니다. 억만장자인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 캐피털 CEO도 그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두 남자는 테슬라 공매도를 놓고 수년간 설전을 벌였습니다.뜬금없는 농담은 아인혼이 “머스크가 반바지를 보내왔다”고 인증샷을 올리며 궁금증이 해소됩니다. 머스크는 2019년에도 아인혼을 겨냥 “테슬라 주가 급등으로 큰 손실을 본 것에 동정을 표한다”고 공격했습니다. 테슬라는 실제로 2020년 자사 온라인몰에 빨간색 ‘테슬라 짧은 반바지(Tesla Short Shorts)’를 출시합니다. 69.42달러(약 9만2000원)에 나온 이 상품은 나오자마자 완판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테슬라 팬들은 이 반바지를 입고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습니다.테슬라가 이달 초 연말 상품으로 내놓은 65달러(약 8만6000원) ‘모델 X-mas 스웨터’도 나오자마자 동났습니다. 테슬라의 대형 SUV인 모델X와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X-mas’를 합쳐 말장난한 겁니다. 전형적인 머스크식 농담입니다. 한 테슬라 팬은 트위터로 “이 스웨터를 입고 나가면 ‘찐 테슬람’ 인증엔 문제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술을 판다고?
자동차 운전과 술은 상극입니다. 음주운전이 어떤 사회적 지탄을 받는지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머스크는 이러한 불문율도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테슬라는 2020년 ‘테슬라 데킬라(Tesla Tequila)’를 선보입니다. 오크통에서 최소 1년 이상 숙성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최고 등급 ‘아네호(Anejo)’ 데킬라를 담았고 한 병 250달러(약 33만원)에 내놓았습니다. 소비자 1명당 2병으로 구매를 제한했지만 출시 당일 완판됐습니다.테슬라 데킬라 출시엔 사연이 있습니다. 2018년 테슬라는 모델3 생산 지연 등으로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파산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머스크는 ‘테슬라가 파산했다’는 글과 함께 모델3에 기대 데킬라를 마시다 골판지 박스를 덮고 누운 본인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이날은 만우절이었습니다. 2년 전 머스크의 만우절 농담을 실제 상품으로 선보인 것입니다. 이 스토리를 아는 테슬라 팬들에겐 각별한 상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선 넘은 굿즈, 화염방사기
“좀비로 인한 종말이 온다면 (좀비 퇴치를 위해) 화염방사기를 사두는 게 좋을 겁니다. 땅콩을 굽는데 제격입니다”2018년 머스크는 트위터로 보링컴퍼니의 자금 마련을 위해 화염방사기를 출시한다고 공개합니다. 이 굿즈는 그가 좋아하는 공상과학(SF) 패러디 영화 <스페이스볼스(Spaceballs)>에 나온 화염방사기를 본뜬 것입니다. 테슬라에 따르면 알코올을 연료로 사용하고 약 30㎝의 불을 뿜어냅니다. 가격은 500달러(약 66만원). 2만개 수량이 며칠 만에 동났습니다. 단숨에 1000만달러(약 133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입니다.당시 이 화염방사기는 세간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마케팅용 상품으로 웃어넘기기엔 선을 넘었다는 겁니다. 언론들은 화재 위험 등 안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소방관 출신 주의회 의원은 “역대 최악의 화재를 겪은 이곳에서 화염방사기를 파는 건 몰상식한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0달러에 소화기도 판다”고 넘어가려던 머스크도 논란을 의식한 듯 이 상품을 만든 건 나쁜 아이디어였다고 인정했습니다(권종원《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테슬라 굿즈 돈 된다” 되팔이 몰려
테슬라 한정판 굿즈가 인기를 끌자 자연스레 ‘되팔이’족들이 몰렸습니다. 일단 사들인 후 이베이 등 거래 사이트에 몇 배의 웃돈을 붙여 내놓는 겁니다. 전 세계 테슬람들이 워낙 많기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웃돈이 붙은 대표적인 상품은 2018년 1500달러(약 200만원)에 나왔던 ‘테슬라 서프보드’입니다. 이 제품은 테슬라 디자인팀과 서프보드 제작업체 ‘로스트 서프보드’와 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문과 동시에 제작하는 방식으로 200개 한정판이었습니다. 이 굿즈는 로스트 서프보드 기존 제품의 두 배 가격이었지만 하루 만에 완판됐습니다. 워낙 소량이다 보니 당시 트위터에선 ‘테슬라 서프보드를 구할 수 없냐’는 질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후 이베이엔 몇 배의 웃돈이 붙은 ‘테슬라 서프보드’가 올라왔습니다. 현재도 박스를 뜯지 않은 새 상품을 9995달러(약 1330만원)에 판다는 글이 있습니다. 운 좋게 이 굿즈를 산 사람은 ‘오픈런’을 하거나 줄 서는 수고 없이 안방에서 1000만원을 번 셈입니다.테슬라가 작년 말 1900달러(약 253만원)에 내놓은 어린이용 전기 사륜오토바이(ATV) ‘사이버쿼드 포 키즈’는 단 6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이 바이크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동력으로 최고 시속 10마일(16.1㎞), 1회 충전으로 15마일(24.1㎞)을 주행할 수 있습니다. 외형은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디자인에서 따왔습니다. 테슬라가 선보인 굿즈 중 차량 관련 상품을 제외하면 가장 고가였습니다. 되팔이들이 붙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인기였습니다.
굿즈가 잘 팔리다 보니 관련 실적도 좋습니다. 테슬라의 지난 3분기 서비스 및 기타 부문 매출은 16억4500만달러(약 2조19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매출의 8%에 육박한 수치로 매 분기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테슬라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10-Q)에 따르면 서비스 및 기타 부문 매출은 무보증 차량 판매 후 서비스, 유료 과급, 중고차 판매, 소매 상품, 차량 보험 수익 등으로 구성됩니다.
강력한 팬덤, 그리고 컬트 문화
머스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비견되곤 합니다. 잡스가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전 세계 애플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머스크도 2004년 테슬라에 합류한 이후 전기차 혁명을 주도하며 잡스 못지않은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이 팬덤 층이 매우 두텁습니다. 머스크와 테슬람은 일종의 컬트 문화와 유머 코드를 공유합니다(권종원《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 테슬라 굿즈에 미국식 농담이 짙게 배어있는 이유입니다.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는 태생부터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기존 완성차 회사들과 결이 달랐습니다. 일각에서 ‘튀는 마케팅’만 추구한다는 비판은 머스크와 팬들이 공유하는 자유분방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테슬라의 다음 한정판 굿즈는 어떤 기상천외한 물건이 나올까요.▶‘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