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안 남긴다"…입사하면 '이 앱'부터 깐다는 증권맨들 [조아라의 IT's f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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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텔레그램에서 말해." "내용은 텔레그램으로 보내줄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비밀스러운 대화나 보안이 필요한 얘기를 하려는 것으로 간주된다. 텔레그램은 여러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중에서도 '강력한 보안'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은밀한 대화는 이곳에서"…흔적 안남기는 SNS

텔레그램은 지난달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인해 당시 라인·페이스북 메신저 등과 함께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카톡 먹통 사태 이틀 뒤인 지난달 17일 텔레그램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 "텔레그램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 중 하나가 됐다. 새 한국 이용자들을 환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앱 분석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카톡 서비스 장애 이전인 지난달 14일 이용자가 106만명에서 서비스 먹통 이튿날(16일)에는 이용자가 128만명으로 급증했다. 분석 기관마다 집계 차이가 있지만 국내 텔레그램의 국내 이용자수는 최소 200만명 규모로 추산된다.

2013년 출시된 텔레그램의 전세계 이용자 수는 상당하다. 시장 마케팅·컨설팅업체 케피오스에 따르면 지난달 텔레그램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7억명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인스타그램이 13억8600만명, 중국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웨이신 12억9900만명, 틱톡 10억명, 페이스북 메신저가 9억7600만명 등으로 집계됐다. 텔레그램도 상당히 많은 이용자들을 확보한 셈이다.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텔레그램은 SNS 가운데 개성이 뚜렷한 앱 중 하나로 꼽힌다. 메신저 앱 가운데 보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텔레그램은 사용자 간 대화 내용이 암호화된 상태로 오가며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때문에 메시지에 대해 감청과 검열이 어렵다.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가 러시아 정부의 암호 해독 키(Key) 제공 요구를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강력한 보안효과…정치인·공직자들 사이 '인기'

국내에서 텔레그램이 급부상한 것은 2014년 이른바 ‘사이버 망명’ 사태와 관련이 있다.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불거지면서 텔레그램으로 이용자들이 옮겨왔다. 일반 메신저보다 사생활이 안전하게 보호된다고 알려져 한때 앱스토어에서 카톡을 제치고 다운로드 순위가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해 10월 텔레그램은 한국어 버전을 내놓고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강력한 보안성을 내세우기 때문에 정치인·공직자·사업가들이 텔레그램을 '애용'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드루킹' 김동원 씨가 텔레그램으로 소통한 게 대표적 사례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씨가 2020년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뛰어난 보안성은 '양날의 검'이다. 사회적 범죄와 성범죄 등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조주빈은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제작·유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엔(n)번방과 박사방 등을 비롯한 130개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아동 청소년을 상대로 만든 성 착취물이 공유돼 논란이 됐다.

마약 불법 유통 및 판매도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로부터 제출받은 '마약류 불법 유통·판매 점검 결과'에 따르면 마약을 불법으로 유통·판매하는 사람의 72.8%가 텔레그램을 통해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맨도 "없으면 안돼"…익명 소통장으로 활용

금융투자업계도 텔레그램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직종으로 꼽힌다. 특히 금융업계의 경우 투자자 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 국내 금융업계 한 종사자는 "입사하자마자 텔레그램부터 깔았다. 지금까지 안 쓰는 사람을 못봤다"며 "은밀하게 각종 투자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부서간 소통 목적으로 매일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금융업계 종사자 역시 "투자자 간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각종 이슈와 뉴스, 가십거리, 지라시 등을 공유한다"며 "대화 기록이 남으면 찝찝하고 나중에 추적당할 수 있기 때문에 텔레그램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코인방 등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자들도 텔레그램을 통해서 투자 정보를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는 입장료 등을 요구하고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방도 있다.

텔레그램 알림봇 등을 이용한 투자 정보 자동알림 서비스도 유용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다. 사업을 하는 경우에도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 계약 또는 사업 정보 등을 은밀하게 공유할 때 활용하기도 한다. 한 사업가는 "비밀대화 기능이 있어 지인들로 구성된 모임에서 종종 사용한다"고 전했다.

일반 직장인과 대학생들도 텔레그램을 가입해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생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통 목적으로 한 번 가입해봤는데 주로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카톡은 주로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때 사용하고 텔레그램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쓴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부담없이 대화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B씨도 "텔레그램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대용량 파일전송도 가능하고 광고도 적어 사용하기에 가볍고 깔끔하다고 느껴진다"며 "사진과 문서 등 개인적인 자료 저장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카카오톡의 강력한 '선점효과'로 텔레그램이 주류 메신저로 올라설 가능성은 낮지만 강력한 보안효과에 힘입어 꾸준히 사용받는 SNS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한국인들은 SNS를 가장 자주, 많이 사용하는 국가로 꼽힌다. 카톡 장애를 계기로 라인이나 텔레그램 등 '서브 메신저'를 용도별로 활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