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빠진 몸매가 다 아냐"…'운동하는 엄마들'에 꽂힌 이유 [긱스]

'운동 맘' 커뮤니티 서비스 내놓은
남윤선 패러다임시프트 대표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한다.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뺏을까 고민하고, 본인만 진지하고 모두에게는 웃긴 고백을 한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걸 한다.

어느날 정신차려보면 그 여성은 온데간데 없다. 한달에 절반은 아프고 펑퍼짐한 옷만 골라 입는 아줌마가 있을 뿐이다. 출산으로 몸은 망가지고, 육아로 더욱 망가진다. 자녀가 장성할 때 쯤이면 완경이라는 또 다른 공격이 찾아온다. 그 결과가 유병기간의 증가다. ‘기대수명 - 건강수명’의 개념이다. 여성의 유병기간은 10년 전에는 17년 정도였으나 지금은 21년에 이른다. 온갖 의술이 발달함에도, 여성들은 그저 병든채로 오래 살 뿐이다. 엄마가 아프면 가족 전체가 불행해진다.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마흔을 넘긴 아내는 자주 아팠다. 우연히 PT를 권유해 봤다. 마음에 맞는 PT 코치를 만난 아내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살이 빠지고 몸매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삶 전체가 밝아졌다. 엄마가 밝아지니 가족 전체가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 이건 인생이 변하는 경험인데… 왜 주변에 운동하는 엄마들이 잘 없지?”

조사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운동맘’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배우 이시영 씨가 대표적 사례였고, 46세임에도 탄탄한 몸매로 엄마들의 롤모델이 된 ‘빅시스’ 같은 유튜버도 있었다. 엄마이면서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VC)인 분에게 찾아갔다. ‘운동맘 커뮤니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서비스 컨셉이 더욱 정교해 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잘만 만들면 돼지를 날려보내는 태풍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줬다. 운동맘이라는 키워드가 큰 태풍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40대 아저씨가 ‘운동맘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다.

뭣 모르고 시작한 창업, 첫 실패

창업가들은 하나같이 ‘뭘 몰라야 창업한다’라고 얘기한다. 직접 겪기 전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마음에 ‘창업’이라는 씨앗이 박히니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신 차려보니 별 대책도 없이 회사를 그만둬 있었다. 다행히 함께해 주겠다는 사람이 한명은 생겼지만 그는 개발자가 아니었다. 문과생 두명이 IT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허름한 오피스에 자리를 잡았다.
첫 사무실에 입주 후 공동창업자와 찍은 사진
처음 생각한 모델은 ‘인터뷰 기반 추천형 커머스’ 였다. 롤모델이 될 만한 건강한 엄마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그들이 건강해 지는 과정에서 사용한 물품, 식품, 영양제 등을 판매하면 팔릴 것 같다는 가설이었다. 보통 엄마들이 영양제나 옷 같은 걸 살 때 ‘아는 언니’의 추천을 받아 산다는 점에 착안했다.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등을 뒤져서 ‘운동맘’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을 리스트업 했다. 닥치는대로 메시지를 보냈다. 수백명에게 연락을 했는데 3명에게 답장이 왔다. 그렇게 세명을 인터뷰 했다. 커머스 플랫폼은 개발자 없이 노코딩 툴(코딩 없이 IT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도구)을 활용해 만들었다. 그렇게 어설픈 사이트를 2주일만에 오픈하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엄마들이 영웅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히로인스(heroines, 영웅의 여성형 명사)’라는 거창한 이름도 붙였다.
첫 서비스의 모습
안팔렸다. 온갖 맘카페에 광고글을 올리고 삭제당하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했으나 헛수고였다. 몇몇 지인들이 동정 어린 구매를 해줬을 뿐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걸 하려고 회사도 관뒀는데. 의외의 힌트가 발견됐다. 물건은 사지 않았지만 운동맘의 인생 스토리와 건강관리 비법을 담은 인터뷰에 대한 반응이 있었다. 이틀만에 3,000명이 사이트를 방문했다. ‘운동맘’이라는 컨셉 자체가 틀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이트를 방문한 유저들도 “운동맘이 추천하는 컨셉은 좋았고, 물품군이 좀 더 풍성했으면 구매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남겼다.

커뮤니티로 방향을 선회했다. 운동맘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동기부여를 하는 공간이 떠올랐다. 일단 운동맘을 모으고 나면 커머스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전 직장에서 작지 않은 규모의 커뮤니티를 구축해 본 터라 자신감도 좀 있었다. 그렇게 현재의 히로인스가 탄생했다.

계획은 없다. 고객 반응대로…

다행히도 운동맘 커뮤니티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운동을 통해 건강은 물론 자존감을 찾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엄마들의 스토리가 줄을 이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거울조차 보기 싫었다는 엄마는 얼마전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 30대 내내 희귀병에 시달리던 엄마는 조심스레 집앞 공원을 걷기 시작하다가 지금은 마라톤을 준비할 정도로 건강해졌다. 48세에 사업을 시작해 꽤 큰 성공도 거뒀다. 스토리들이 퍼지고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스토리가 올라왔다.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하는 엄마들을 위한 ‘운동일기’라는 기능도 내놨다. 보통의 운동 기록앱은 몸무게와 칼로리를 묻는다.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엄마들에게 체중 감량에 대한 강박은 스트레스일 뿐이다. 그래서 숫자는 전혀 묻지 않고 운동 후 감정만 묻는다. 할 땐 힘들어도 하고 나면 뿌듯한 게 운동인데, 그 감정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다보면 운동이 습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다행이 어느 정도는 가설이 맞아, 운동 일기를 한번이라도 써 보면 80%가 서비스를 재방문한다.

기술의 혁신이 아닌 개념의 혁신

다수의 엄마들은 운동 경험이 적다. 있다고 하더라도 임신, 출산으로 공백이 길다. 다시 운동 습관을 들이려면 PT 등 비싼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 히로인스는 엄마들이 운동 습관을 들이기 위한 칭찬과 격려, 정보와 도구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작금의 투자 혹한기에도 이 비전을 믿어주는 투자자를 만났다. 한국의 엄마 인구는 1,00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 공통된 아픔을 겪는데, 이들의 건강 문제에 집중한 플랫폼은 없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집단이 모이면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한번 형성된 커뮤니티는 자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커뮤니티 자체에 AI와 같은 힙한 기술적 요소는 없다. 하지만 신기술을 써야만 혁신은 아니다. ‘오늘의 집’은 집을 꾸미려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한샘보다 큰 기업가치를 지닌 가구 거래 업체가 됐다. 고객의 욕구를 제대로 읽어내고 커뮤니티로 엮은 것이다.

더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가구나 옷에 쓰는 돈은 아껴도 건강에 아끼지는 않는다. 집에서 누가 영양제를 사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챙길까. 엄마다. 히로인스가 건강해지고자 하는 엄마들을 많이 모으고 싶은 이유다.
남윤선 패러다임시프트(히로인스 운영사) 대표

△ LG상사 해외영업
△ 한국경제신문 기자
△ 싸이월드 미디어전략팀장
△ 드라마앤컴퍼니(리멤버 운영사) 콘텐츠크루 PO(프로덕트 오너)
△ (현) 패러다임시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