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국정 운영에는 한판승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서 출발한 尹정부
지지층 이탈하고 무당층 증가
국정지지율 30%선 고착

전용기 탑승 배제 등 실점 속출
차근차근 점수 쌓지 않으면
이재명 리스크 반사이익 없어

서화동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역대 대선 중 가장 적은 0.7%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윤 대통령은 정치 신인이다. 경쟁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선 의원이지만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거친 베테랑이다.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점한 제1야당은 무소불위(無所不爲)다. 정부가 뭘 좀 해보려고 해도 번번이 국회에서 야당의 벽에 막혀버린다. 무엇보다 경제가 안 좋다. 코로나19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덮친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위기는 국민의 삶과 경제를 옥죄고 있다. 일제히 동투(冬鬪)에 나선 노동계도 우군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국정의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지지율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 22~24일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에 그쳤다. 취임 두 달 만에 30%대로 떨어진 지지율은 석 달도 안 돼 20%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후 내내 콘크리트 지지층이 떠받치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윤 대통령과 참모진의 대응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보고 일하겠다”거나 “열심히 하다 보면 국민들이 진정성을 알아줄 때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삶은 고구마를 통째로 삼킨 듯 답답하다. 국민 10명 중 6명이 국정 수행에 대해 부정적인데 도대체 어떤 국민을 바라본다는 것인가. 정권 출범 초 16%였던 무당층이 29%로 늘었다는 건 여권 지지층이 이탈했다는 증거다.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점수를 깎아 먹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취임 초 내각 구성 과정에서의 혼선은 오래된 일이라 치자. ‘사모님 리스크’도 스토킹에 가까운 야당의 시비 때문이라고 해두자.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여기서 파생된 전용기 탑승 배제, 이태원 참사 등에 관한 대응은 합리적 다수의 상황 인식 및 판단과는 괴리가 크다. 비속어 논란의 경우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불명확하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이XX들’은 또렷하다. 게다가 지칭하는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니라 우리 국회라고 인정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깔끔하게 사과하는 게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를 거부함으로써 MBC의 ‘악의적 왜곡보도’에 대한 대항력이 약해져 버렸다.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는 어떤가. MBC의 보도 행태에는 분명히 많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콕 집어서 MBC만 배제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계산도 안 해본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온 ‘자유’와 충돌하게 되고, 언론자유 침해라는 휘발성 높은 이슈가 된다는 걸 몰랐나. 한·미, 한·일, 한·미·일, 한·중 정상회담을 잇달아 하면서 주목받았는데도 동남아시아 순방이 지지율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 아닌가. 윤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출근길 문답까지 중단한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선택이다. 대통령이 전용기 내에서 특정 매체만 골라 한 시간가량이나 면담해놓고 “개인적인 일”이라고 한 것도 납득 불가다. 국익을 위한 해외 순방이 사적인 여행인가.10·29참사 이후 윤 대통령이 종교 행사에서가 아니라 별도의 담화나 성명 형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면 일부 유족이 새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과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야 뒤끝이 없는 법이다.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와 사퇴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한 것은 여론 무시, 국민 무시로 읽혔다. 참모들의 잇따른 헛발질도 빼놓을 수 없다.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한 총리의 부적절한 조크와 웃음, 대통령실 수석들의 ‘웃기고 있네’ 메모와 ‘좋게 생각합시다’ 발언, 행안부 장관의 ‘폼나게 사표’ 발언 등은 실망과 한숨을 동시에 자아냈다.

안타까운 건 정부 정책이 나빠서 지지율이 낮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지율이 낮은 상태로는 연금·노동·교육·공공 등 4대 개혁과 규제개혁, 세제 정상화 등 주요 정책 과제를 힘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길이 없는 게 아니다. 뭘 해도 내 편인 ‘콘크리트 지지층’의 박수에 들뜨지 말고, 민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라. 인적 쇄신을 주저하지 말라. 널리 의견을 구하고 비판자들의 쓴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안 그러면 지지율 반등은 요원하다. 혹 이재명 리스크의 반사 이익으로 일거에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국정 운영에는 KO승이나 한판승이 없다.